내려놓는 연습을 해야한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기에
2021.07.06 17:36
수정 : 2021.07.07 10:57기사원문
어느날 아침,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그 전화가 왔다. "줄리, 그가 또 술을 마셔."
가족이 안 좋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커피를 따르는 동안, 노란 네살배기 래브라도 레트리버 클라이드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무게 45㎏의 개로서는 최대한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녀석은 지금이 산책 시간인 걸 알았다.
"넌 언제나 행복해. 그렇지 않니, 아가야?"
금주하다가 다시 음주를 시작한 가족이 휘말릴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커피를 마셨다. 전화 한 통으로 20년 동안 내가 알아넌(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의 음주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자조 모임)에서 회복을 위해 애쓴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 당장은 12단계(알코올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치료 단계)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걱정하는 편이 나았다.
"클라이드, 이리 오렴. 산책하러 가자." 클라이드는 날 앞장서서 후문까지 요란스럽게 뛰어갔다.
걱정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내게 오시게끔 하는 단계에 이른 적이 있던가?
아이팟을 꺼내고 클라이드의 목줄은 쓰지 않기로 했다. 녀석은 절대 떨어져서 돌아다니는 법이 없었다. 다람쥐를 쫓는 법도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우리는 몇 에이커에 이르는 숲속 깊숙한 곳에 산다. 도로에서는 우리 통나무집이 보이지 않았다. 자갈을 깐 진입로는 530m 정도였고 산책할 만한 곳이 많았다.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무선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높여서 음악으로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애썼다.
몇 달 전, 포기해야 했던 또 다른 상황에 부닥쳤을 때 알아넌에서 만난 조력자 BJ와 이야기를 나눴다.
"줄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네가 통제할 수 없어. 그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식으로 하고 계셔. 줄리가 할 일은 걱정을 내려놓고 그분을 믿는 거야."
BJ는 내 조력자일 뿐만 아니라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다. 우리가 클라이드를 들였을 때 BJ는 아주 신이 났다. 브리더는 겨우 6주 된 클라이드를 내주었다. 너무 어릴 때 데려가는 건가 싶었다. BJ는 강아지가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켰고, 그 말이 맞았다.
클라이드가 진입로를 따라가며 나무를 킁킁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열다섯살에 세상을 떠난 검은 래브라도 레트리버 쿠퍼를 떠올렸다. 둘은 외모도 성격도 딴판이었다. 클라이드는 쿠퍼처럼 근사한 대회용 체형이 아니었다. 통 모양의 가슴에 다리는 길고 가늘었으며 체중은 쿠퍼보다 7㎏ 정도 더 나갔다. 클라이드는 머리가 무거워서 불안정하고 약간 독특하게 생겼지만, 성격은 어떤가. 느긋하고 충성스러웠다. 자기 가족과 함께 있는 걸 가장 좋아하는 개였다.
"클라이드, 너는 걱정하는 법을 몰라. 그렇지, 아가?"
녀석은 내게 활짝 웃어 주며 계속 걸었다. 진입로 끝에 있는 우편함까지 갔다가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향했다.
도로에서 15m쯤 떨어진 곳에서 클라이드가 내 옆에 없다는 걸 알아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녀석은 언제나 내게 바짝 붙어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뺐다. 음악이 큰 소리로 흘렀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짖는 소리나 자동차 경적, 끼익 하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라이드의 흔적이 없었다.
"클라이드, 이리 와!"
클라이드는 고집쟁이가 아니었다. 내 소리를 들었다면 뛰어올 것이다.
진입로를 따라 급히 내달렸다. 그러다가 절룩거리며 다가오는 클라이드를 발견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른쪽 허리께가 안쪽으로 흔들렸다. 발이 피투성이였다. 내 발치에 쓰러지기 전에 겨우 꼬리를 흔들었다.
'분명 차에 치였어.'
클라이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따금 호흡이 가빴다.
'수의사에게 데려가야 해.'
내가 들고 가기에는 클라이드가 너무 컸다.
"클라이드, 이리 와."
녀석은 황갈색 눈으로 날 응시하면서 영양(羚羊) 같은 다리를 쭉 폈다. 그러고 우뚝 섰다. 내 다리를 두드리며 '따라와' 했다. 천천히 한 걸음씩 클라이드는 나와 함께 76m 떨어진 차까지 걸었다.
차까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죄책감이 밀어닥쳤다. 목줄을 썼더라면. 좀 더 주의 깊게 살폈더라면. 아이팟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끙끙대며 걱정하지 말고 조심했더라면.
마침내 차에 이르렀다. 간신히 클라이드를 뒷좌석에 태우고 BJ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도해 줘. 수의사에게 가는 길이야. 클라이드가 차에 치였어."
몇 분 후 우리는 검사실에 있었다. 수의사는 무엇도 단언하지 않았다. 클라이드는 폐와 흉벽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공기가 쌓여서 호흡이 힘들어지는 기흉일 수도 있었다. 수의사는 클라이드를 데리고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하고 싶어했다.
"어떤 개들은 이런 부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고관절 골절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호흡이 악화되면 밤새워 지켜볼 수 있는 더 큰 동물병원으로 옮길 겁니다. 오늘 오후 4시쯤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때쯤이면 더 많은 걸 알아낼 겁니다."
시계를 봤다. 9시30분. 4시까지 기다릴 수 있으려나? 떠나기 전에 클라이드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미안해, 아가야. 사랑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세세히 되짚으며 시간을 되돌려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점심 즈음이 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클라이드를 보러 가야 했다. 수의사의 진료실로 가는 동안 전화가 울렸다. BJ였다.
"얘, 괜찮니?"
BJ에게 소식을 전했다.
"뭘 해야 하는지 알지, 그렇지?"
"그렇게 정신 놓고 있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줄리,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 그건 사고였어. 떨쳐 버려야 해. 클라이드와 함께 하나님을 믿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야."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맡겨라.'
가족, 직장에서의 걱정, 여타 근심거리에 대해 이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넌 괜찮을 거야.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셔."
클라이드가 죽을 수도 있으니 각오하라는 얘기 같았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동물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내가 하나님을 믿었던가? 정말 그분을 믿었던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오늘만 해도, 클라이드와 내 삶의 다른 모든 이를 놓아 줄 수 있을까?
운전대를 움켜쥔 손을 보았다. 단단히 잡았던 걸 느슨하게 풀고 운전대에서 손을 뗀 다음, 손을 뒤집었다. 쫙 편 손바닥이 하늘을 향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저는 아주 강건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클라이드와 제 모든 가족을 하나님의 보살핌에 맡기도록 도와주시겠어요?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니까요.'
동물병원으로 걸어 들어가서 접수처로 향했다.
"일찍 왔어요. 그저 클라이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접수 담당자는 아까 그 검사실로 날 이끌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수의사가 어떤 얘기를 하든, 결과가 어떻든,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수의사가 들어오더니 엑스레이 사진과 약 몇 병을 든 채 말했다.
"클라이드는 정말 상냥해요. 기흉이 있지만, 골절은 없습니다. 가슴이 통 모양인 덕분에 살았어요. 많이 쉬어야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클라이드가 괜찮아요? 정말요? 회복할 수 있는 거죠? 오, 고맙습니다! 클라이드를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거의 믿을 수 없었다.
"그럼요. 같이 귀가하세요."
기사가 검사실로 클라이드를 데려왔다. 녀석은 흔들거리며 내게 몇 걸음 걸어오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큰 머리를 내 무릎에 털썩 얹고는 내 손을 핥았다. 클라이드의 목에 내 팔을 둘렀다.
차에서 BJ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거 알아? 클라이드가 무사해. 지금 같이 있어. 믿을 수 있니?"
"당연하지! 나 대신 클라이드 좀 안아줘. 언제든 걱정하려는 마음이 강하게 들거나 상황을 통제하고 싶을 땐 그게 무슨 뜻인지 네가 잘 알고 있다는 걸 기억해."
"응,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맡겨야 해. 다시 또 그래야 해."
"하나 더 있어. 클라이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넌 괜찮았을 거야."
친구의 말을 믿었다. 내게 벌어진 모든 일에서 그의 말을 믿었다.
"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내려놓아야 해. 다른 길은 없어."
날 응시하는 클라이드를 백미러로 바라보았다. 녀석은 옆길로 샜고 나도 그랬다. 나는 길을 잘못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곁을 떠나 떠돌았지만, 이제는 클라이드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