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정화시설 갖춘 150년 전 대형 화장실 발견

      2021.07.08 12:29   수정 : 2021.07.08 12:2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경복궁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흔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이와 같은 화장실 시설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경복궁 화장실의 존재는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궁궐지' 등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의 화장실은 최대 75.5칸이 있었는데,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돼 있었으며 특히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와 동궁 권역을 비롯해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고종 5년인 1868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이번에 발굴된 유구의 토양에서는 많은 양의 기생충 알과 오이, 가지, 들깨 씨앗 등이 검출됐다.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의 규모는 4∼5칸으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인 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고대 유적에서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의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지만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 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소장은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다"며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고 부연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로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오는 12일부터 공개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시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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