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감·풍미 뭐하나 흠잡을게 없네 간편식 권태기가 눈녹듯 '사르르'
2021.07.08 18:06
수정 : 2021.07.08 18:19기사원문
"이번에는 뭐 먹지?" 고만고만한 가정간편식(HMR)들을 많이 먹다보니 입맛이 무뎌지는 듯하다. 새로운 먹거리가 절실하다.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불쑥 우리 부서(생활경제부) 식음료 담당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테이스티나인은 데우기만 바로 먹을 수 있는 차세대 밀키트 '레디잇(READY EAT)'을 비롯해 △프리미엄 가정식 '탐나는밥상' △육가공 전문 '신선고깃간' △스테이크 전문 부처스나인(Butcher's9)' △국물요리 전문 '온기원' △중화요리 전문 '테이스티 반점' △일본 가정식 '테이스티 도쿄' △마켓컬리와 협업한 '신사동백반' 등 여러 개의 하위 브랜드를 갖고 있다.
자연스레 그 맛이 궁금해졌다. 이리저리 잴 것도 없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신박하게 보이는 이름들을 푸짐하게 쓸어담았다.
■이 만한 간식 없다… 먹어바오
'찐빵 사이에 속재료를 채워 먹는 대만식 길거리 음식으로 바오번의 쫄깃한 식감과 풍미넘치는 속재료의 찰떡궁합!'
대만식 버거 '먹어바오'의 포장지에 적힌 문구다. 정말 한 치도 틀림이 없는 그대로의 맛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자주 접하는 '고추잡채'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맛은 많이 다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상큼하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바오번 안에 소스를 바르고, 샐러드와 당근피클, 돼지등심 바베큐를 넣는다. '입이 짧은' 아내와 딸아이는 "고기에서 동남아 음식 특유의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이들이다. 고기를 빼고 속을 채운 다음 맛나게 먹는다. "고기가 없어도 맛나다" "매콤 달달한 소스가 일품"이라며 5개를 모두 먹어치웠다. 이럴 때는 집안 서열 3위라는 게 서럽다. 투덜대면서 바오번을 대신해 식빵으로 남은 고기들과 재료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나의 기대와 상상을 뛰어넘는다. 새로운 요리를 발견한 것 같다. 먹는 내내 기쁨의 웃음이 나온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맛있다. 바오번은 더 맛있을까 궁금해진다.
먹어바오는 한 마디로 "꼭 한 번 먹어보라"고 주위에 광고하고 싶은 맛이다. 재구매 의사 200% 있다. "이렇게 맛있는 건 냉장고에 넉넉히 쟁여두고 먹어야 한다"며 아내가 이미 3개를 주문했다. 속으로 조용히 "만세"를 불렀다.
'몽골리안 비프'는 난생 처음 만나는 퓨전 중국식 요리다. 테이스티나인 홈페이지에는 '소고기를 한 번 튀겨 쫀득한 식감을 더하고, 달큰 짭조름한 양념에 한 번 더 볶은 중국식 고기볶음'이라고 쓰여 있다. 식감이 독특하다.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다. 꼬집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맛있다. 마늘쫑이 전체적으로 맛의 균형을 잘 잡아준다. 고추장 한 숟갈 넣어서 몽골리안 비프와 밥을 쓱싹쓱싹 비비니 다른 반찬은 1도 필요 없다. 술 안주로도 괜찮을 듯하다.
■와인보다 소주…비프 토마토 스튜
'비프 토마토 스튜'는 와인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골랐다. 하지만 나의 실수였다. 아내는 '물에 빠진 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 소고기가 든 스튜를 먹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내가 다 먹으면 되니까.
작게 썰어 놓은 소고기와 감자, 치즈, 브로콜리까지 한가득이다. 파슬리가 색감을 살려준다. 보글보글 끓으니 냄새가 끝장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국물(소스)부터 한 숟갈 뜨니 와인이 아니라 소주가 생각난다.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는 국물에 찍어 먹는 게 건더기를 올려 먹는 것보다 훠얼~씬 낫다. 바게트가 달랑 4개 밖에 없어 서운할 정도다. 하필이면 이럴 때 냉장고에 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니. '밥을 말아 김치랑 먹으면 어떨까' 궁금했지만 스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참는다.
함께 먹은 '미트볼 파스타'는 아주 익숙한 맛이다. 미트볼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관계로 언제 어디서든 실패하지 않을 메뉴 가운데 하나다. 오늘은 딸아이한테 한 젓가락도 양보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남은 비프 토마토 스튜 소스에 파스타를 비벼 먹으니 둘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벌써부터 비프 토마토 스튜와의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이날 아내의 와인 안주는 '부처스9 안심스테이크'로 정해졌다. 부드러운 호주산 안심살에 아스파라거스와 새송이버섯, 양파, 그린빈까지 알차게 들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쳐다보았으나 자비는 없었다. 아내가 넘겨준 것은 본인이 싫어하는 아스파라거스와 희미한 크기의 안심 한 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감사하면서 맛을 봤다. "이렇게 맛있는 걸 혼자 먹다니…내일 바로 주문해서 제대로 먹어보리라."
■야채와 푸짐한 만남…전주식 비빔밥
'전주식 비빔밥'은 제일 잘 고른 메뉴다. 요즘처럼 이른 더위에는 아점(아침+점심)으로 이 만한 메뉴도 없다. 콩나물, 참나물, 도라지, 고사리, 애호박, 무채 등 나물 6가지와 소고기볶음, 계란지단까지 푸짐하게 들었다.
아내의 눈대중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내 눈에는 딱 봐도 2인분이다. 하지만 아내는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양푼까지 등장했음에도 "대식가라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며 '윤경현용 1인분'이라고 박박 우긴다. 게다가 "비빔밥에는 계란프라이가 있어야 제 맛"이라며 두 개나 부쳐냈다. "'쭈꾸미볶음'을 얹으면 더 좋겠다"는 아내를 겨우 말렸다.
다행히 나물들은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고추장은 3분의 2만 넣었다. 조금 싱거운 듯한 게 좋다. 나물의 양이 밥보다 두 배는 돼 보인다. 그래도 맛있는 걸 어쩌나. 어느 새 양푼을 끌어안고 비빔밥을 입에 퍼 넣는 내 모습을 본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역시 고기보다 나물, 즉 채식이 체질이다.
아내의 예언대로 기어이 '완양푼'했다. 깨끗이 비워냈다는 얘기다. 아침부터 운동을 빡세게 한 탓에 배가 많이 고팠던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배가 꺼지지 않았다. 이날의 식사는 이 한 끼로 끝났다. 당분간 비빔밥은 식사 메뉴에서 빼야겠다.
'밀푀유나베'를 실물로 영접한 것은 다음날 저녁이었다. 일본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음식이라 기대가 크다. 밀푀유나베는 '1000겹의 잎사귀'라는 프랑스어 '밀푀유(mille feuille)'와 '냄비'를 뜻하는 일본어 '나베(なべ)'가 합쳐진 말이다.
번거로운 재료 손질은 테이스티나인이 전부 다 했다. 켜켜이 쌓인 배추와 깻잎, 고기를 냄비에 옮겨 담고, 육수를 부어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팽이버섯과 표고버섯, 청경채도 들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양이 적은 줄 알았는데 냄비가 가득찬다.
첫 인상이 강렬하지는 않다. 멸치육수를 먼저 맛본다. 살짝 싱거운 듯하지만 초깔끔하다. 잔치국수가 생각난다. 이번에는 배추, 깻잎, 고기를 한 입에 담는다.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존맛탱이라기엔 5% 부족하다. 샤브샤브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고기가 조금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스 없이도 충분히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를 꺼냈다. 탁월한 선택이다. 역시 한국사람 곁애는 김치가 있어야 한다.
건더기를 다 먹은 후에는 죽이다. 육수를 적당히 남겨서 밥과 잘게 썬 김치, 양파를 넣고 눌어붙지 않도록 한참을 젓는다. 팔이 아플 만큼 열심히 저어야 맛이 배가 된다. 마지막으로 계란과 참기름, 김가루를 투하하면 완성이다. 역시 이 맛이다. 밀푀유나베를 빛나게 만든다. 아내도, 나도 그릇에 코를 박는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