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패망 잊었나… 20년만에 아프간 떠나는 美

      2021.07.11 17:34   수정 : 2021.07.11 17:34기사원문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그들은 능력 면에서 비슷하지도 않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국대사관 지붕에서 사람들이 헬리콥터로 피난하는 광경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철군으로 1975년 남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날 발표에서 지난 20년간 이어진 아프간의 미군 작전을 종료한다며 9·11테러 20주년에 맞춰 미군 철수를 완료한다고 알렸다.
바이든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차지할 일은 없다고 장담했지만 미국이 베트남전의 교훈을 잊고 아프간에서 실수를 반복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단 바이든이 해묵은 아프간 문제를 정리하고 러시아와 중국 견제에 집중한다고 내다봤다.

■월남 멸망과 판박이

아프간 현지 상황은 바이든의 낙관론과 달리 남베트남(월남) 멸망 당시와 매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미군은 1973년 1월 파리평화조약 이후 같은 해 3월 월남에서 철수했고 월맹군은 이후 약 10개월 뒤에 평화조약을 깨고 남침을 시작, 미군 철수 이후 2년1개월 만에 사이공을 점령했다. 미국은 지난해 2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지난 5월 1일부터 철군을 시작했다. 미국을 도와 2001년 침공부터 아프간에 도착했던 영국과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이미 병력 대부분을 물렸다. 미군 역시 주둔군의 약 90%를 아프간에서 빼냈다.

탈레반 반군은 아직 철군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평화조약을 깼다. 탈레반은 도하조약에서 외국군 철군과 관련해 미국과 나토군 관할지역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4월부터 공세를 개시해 아프간 행정구역 421곳 가운데 100곳 이상을 점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3일 보도에서 미 정보기관들을 인용, 아프간 정부가 미군 철수 이후 6개월~1년 안에 무너진다고 예측했다. 이는 2년은 버틸 수 있다던 기존 예상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다. 다른 서방 정보기관 가운데는 아프간 붕괴까지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보는 곳도 있다.

■미, 부정부패한 아프간정부 포기

CNN은 지난 2일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의 철군 결정이 "직감에 따른 결단"이었다고 전했다. 관계자에 의하면 바이든은 아프간 문제를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봤고 지난 20년간 주둔 결과 더 이상 미군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탈레반이 최근 영토를 크게 빼앗긴 했지만 미군과 직접 충돌을 피하고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한 것도 바이든이 20년에 걸친 미군 주둔을 불필요하다고 느낀 원인 중 하나였다. 바이든은 8일 연설에서 "미군은 아프간에서 목표를 달성했다"며 "우리는 국가 건설을 위해 아프간에 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프간 내부 문제는 아프간 지도자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이 이처럼 아프간에 손을 내저은 이유는 그동안 미국의 아프간 정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01년 아프간 침공을 시작하며 9·11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정작 빈 라덴을 놓치면서 전쟁 목적을 상실했다. 이후 계획도 없었다. 미국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전 대통령에게 정부를 맡겼지만 아프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간은 카르자이 정부와 그에 협력하는 소수 군벌이 예산을 착복하는 극심한 부패와 혼란에 빠졌으며 미국이 아프간 재건을 위해 투입한 1430억달러(약 160조원) 가운데 최소 190억달러가 사라졌다.

■해외 미군 어디로?

바이든은 과거 해외파병 미군을 대대적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동맹 회복을 강조한 만큼 아프간 철군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는 지난 2월 국방부에 전 세계 미군 병력의 배치를 국익과 안보에 맞도록 조정하도록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바이든은 당시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가 지시한 주독미군 감축을 일시 중단하고 검토가 끝날 때까지 병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WSJ는 지난달 미 국방부를 인용해 미군이 이라크와 쿠웨이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패트리어트 대공미사일 8포대를 철수하고 사우디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포함해 전투기 비행중대를 빼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해당 조치가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른 재편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이라크와 시리아에 수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떠나지 않는다. 걸프 지역 파트너 국가에 있는 군기지도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백악관 관계자는 아프간에서 철수한 병력과 장비 중 일부가 중동 지역에 재배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WSJ는 7월 안으로 미군 배치 검토가 끝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러시아 및 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미국 영향력이 아프간 철군으로 급감하자 곧장 세력 확대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장 이달 아프간 사태에 긴장하고 있는 타지키스탄에 지원을 약속했고, 지난 5월에는 키르기스스탄 정상과 만나 안보 및 코로나19 백신 문제를 논의했다.

중국 역시 중앙아시아를 노리는 분위기다.
중국은 이외에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을 아프간까지 연장하기 위해 아프간 정부와 논의 중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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