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巨匠 세이지 작품 160점 한곳에

      2021.07.12 18:57   수정 : 2021.07.12 18:57기사원문
어두웠던 화면 뒤에 흰 빛이 비치면 그제서야 드러난다. 흑백의 화면 위에서 손오공은 호랑이를 때려잡는다. 때론 라이트 박스 안에 빛이 비치자 숨어있던 인어공주는 석양에 오색으로 빛나는 바닷물 위로 슬쩍 몸을 띄우며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일본어로 '그림자 회화'를 뜻하는 '카게에'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 160여점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초 지난해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온 귀한 작품들이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의 디즈니'라고 찬사를 받는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올해 98세를 맞이한 이 거장이 카게에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된 도쿄에서 당시 청년이었던 후지시로 세이지는 잿더미가 된 들판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는 골판지와 전구를 이용해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불에 타버린 일본은 여전히 정전이 잦았고 그 속에서 후지시로 세이지는 카게에를 만나 한 줄기 빛을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평화를 찾았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정신이 깃든 초기의 흑백작품 '서유기' 시리즈부터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비롯해 일본 상업연극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극단 모쿠바자 시절의 오리지널 캐릭터 '캐로용' 인형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는 이번 한국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하루 7시간 이상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았다. 후지시로는 "카게에의 아름다움에 끌려 결국 반세기를 넘겨버렸다"며 "투명한 빛과 평온한 그림자를 대비시키며 종이를 오려내고 붙이는 등 여러 기법을 조합한 뒤 빛을 비추는 방법으로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왔고 예나 지금이나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빛과 그림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가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혼신을 다해 작업했다"며 "나는 한국을 잘 알고 싶고, 한국과 더 가까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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