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스가, 개막식 당일 회담 순번까지 정해놨었는데..." 갈등 장기화 예고
2021.07.19 17:50
수정 : 2021.07.19 20:33기사원문
【도쿄=조은효 특파원】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한일 양국이 상당 기간 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올 가을 공히 선거 정국으로 페달을 밟을 전망이다. 갈등의 장기화가 예고된 가운데, 선거 시즌을 앞두고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국내정치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도쿄올림픽 개막 전부터 달아오른 양국 국민들간 갈등이 올림픽 기간 일촉즉발 폭발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어, 물밑 갈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도쿄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와 주한 일본대사관은 전날 심야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 정상회담을 놓고 막판 줄다리기 협상을 진행했다.
이날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이 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3일 정상회담을 할 방침이라는 보도를 내보낸 상황에서도 서울과 도쿄 이날 정오까지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실제 오전 시간대에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한일 간 방일 협의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밝혔으며, 일본 총리 관저의 비서실장이자 대변인 격인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 역시 "아직 현 단계에선 (문 대통령의) 방일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일파만파 논란이 확산된 주한 일본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의 문 대통령을 향한 부적절한 발언이 결국 문제가 됐다.
사실, 이 사건 직전까지 양측은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을 높게 봤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당일(오는 23일), 스가 총리가 방일한 각국 정상 및 외교사절들과 면담을 마친 뒤 마지막 순서에 한일 정상회담을 배치하기로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 도쿄의 소식통은 "스가 총리의 정상회담 일정 중 마지막에 문 대통령과의 회담을 배치한 것은 두 정상이 보다 여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은 당초 한국 측이 위안부·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다며 '15분짜리' 회담을 제시했으나 양측 간 조율을 통해 회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의견접근을 이뤘었다. 하지만 결국 '회담의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느냐'보다 근본적으로는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 대화 파트너인가'라는 물음에 봉착하면서 문 대통령의 도쿄행이 막판에 무산됐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이날 문 대통령의 방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해 "한일관계를 건설적으로 되돌리기 위해 (징용, 위안부 배상 판결과 관련)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서서, 한국과 제대로 대화해 가고 싶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소마 공사에 대해서는 "외교관으로서 부적절했다"면서도 해당 발언이 정상회담을 무산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한국 측의 결정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문제는 올림픽 후다. 올림픽을 시작도 하기 전 이미 양국 국민감정은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다. 스가 총리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폐막 후인 9월 총리직의 명운이 걸린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선거를 전후해 일본 총선(중의원선거)이 진행된다. 한국은 내년 3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일 관계'가 양국 정가의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현재 자민당 내 분위기가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니카이파를 제외하고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몸담고 있는 호소다파, 아소파 등 주요 파벌들이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도쿄를 방문한 한일 의원연맹의 한 의원은 "국내 정치용으로 한일 관계를 악용하지 않도록 갈등을 관리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