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의 헌법적 가치...전정주 경북로스쿨 교수

      2021.07.22 11:01   수정 : 2021.07.22 11:0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드루킹댓글조작(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으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돼 서울 구치소에 있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2019년 3월 19일 항소심 첫 공판기일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고등법원으로 걸어 들어갈 때 그의 손목에는 수갑이 없었다.

황운하, 최강욱, 한병도, 김남국은 범죄혐의로 수사 중에 있는 피의자 신분임에도 작년 4.15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진석 청와대 상황실장,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수사 중에는 당연하고 기소된 지금도 직무배제나 대기발령 없이 근무하고 있다.

물론 이광철은 얼마 전 사퇴했다.

부산대의학전문대학원에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은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은 부정입학과 관련한 정경심 교수의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었음에도 그 입학이 취소되지 않고 그 사이 의사면허까지 따서 병원에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앞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사상 최초로 피고인인 지검장이 됐고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이성윤 지검장의 직무배제나 징계 청구 여부에 대해 "쉽게 결론 낼 문제가 아니다. 좀 더 살펴봐야 한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고등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인사했다.

김학의 불법출금사건으로 수사받고 기소까지 된 이규원 검사도 징계나 직위해제는커녕 부부장 검사로 승진시켰고 한동훈 검사장 독직폭행으로 수사받고 있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부장 검사는 광주지검차장으로 승진시키더니 얼마 전 인사에서는 울산지검 차장으로 수평 이동했다.


박범계 국회의원은 국회 패스트 트랙과 관련하여 국회 당직자들을 폭행하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 신분임에도 법무부장관에 임명되고 며칠 전 헌정 사상 현직 법무부장관 신분으로 공판정에서 재판받은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조국은 법무부장관을 물러나고 불구속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고 백운규 전 산업통산부 장관도 월성원전1호기경제성평가조작으로 불구속으로 수사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부당징계를 주동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수사받던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음이 없이 성남지청장으로 영전되었다.

전 정권에서는 청와대 비서관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은 수사받거나 기소되면 사표 쓰고 직을 내려놨으나 최근에는 사표도 안 쓰고 직무정지도 안 하더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말 그대로다. 인사상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징계나 직위해제도 없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지금 정부·여권에서는 국민에게 일관되게 무죄추정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렇다. 아무리 수사받는 피의자든 기소되어 재판받는 피고인이라고 할지라도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모두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 법리는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여당의 방향은 옳다.

사실 국가의 의무이자 헌법상의 권리인 무죄추정 법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금처럼 철저히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1789년 프랑스인권선언을 시발로 탄생한 무죄추정은 1980년 우리 헌법에 처음 도입되고 현행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명문 규정을 가진 것이지만 그 정신은 로마법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수사나 재판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죄가 없는 자에 준해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만약 부득이하게 불이익을 준다고 할 때라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나 재판도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하고 설령 구속되었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호송할 때 가급적 수갑을 채우지 말아야 하는 요구도 이 무죄추정에서 오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 고도의 윤리성과 준법성, 행정에 대한 신뢰성 확보라는 공익적 관점에서 국가공무원법은 범죄혐의로 기소된 것을 직위해제사유로 하고 성범죄 등 일정한 경우는 수사받는 것만으로도 직위해제사유로 하면서도 임용권자의 재량사항으로 남겨 무죄추정이라는 헌법 정신을 구현하려 한다.

국민은 특권이니 반칙이니 불공정이니 온갖 단어를 동원하여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노(no)수갑, 이 정권 인사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재판 행태, 피고인인 친정권 검사들을 직위해제나 징계는커녕 승진시키거나 영전을 보내는 지금 정부의 인사정책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기소된 자가 검사장 자리에 있으면 검찰 내부적 사기 저하, 외부에 의한 사법 불신이라는 국민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성윤 검사장 등이 재판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버티고 있는 이유도 헌법상의 무죄추정에 터잡은 것임을 국민은 수용해야 하고 오히려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수사절차에서 재판절차에 이르기까지 형사절차 전 과정은 물론 일반 법생활에서도 국가기관은 무죄추정에 복종해야 한다. 국가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호가 무죄추정이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은 문명국 수준이라야 한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선별적 무죄추정은 허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죄추정은 본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를 그 시원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존엄한 사람 안 존엄한 사람 나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아 청탁금지법 위반혐의로 수사받던 서울 검찰청의 모 부장검사가 지난 6월 25일 검찰중간간부인사에서 멀리 지청으로 발령받았다. 순환근무 차원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장이라는 강등 인사발령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국회법사위도, 어떤 언론사 기자도 이 일에 대해 인사권자에게 묻지 않았다. 이런 부장검사에게는 무죄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무죄추정의 헌법적 가치 구현이 레토릭이 아니라면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1789년 이전의 야만 시대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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