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기본소득 찬성, 게이츠는?

      2021.07.23 19:35   수정 : 2021.07.23 20:50기사원문
이재명 지사 간판공약 발표
저커버그와 머스크는 옹호
게이츠는 "이르다"며 선 그어

소주성 트라우마가 걸림돌
대선 득표에 득일까 실일까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경기 지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같은 글로벌 CEO들도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기본소득 정책발표에서 한 말이다. 어디까지 사실일까. 대체로 맞다.

하지만 게이츠 이름은 빼는 게 좋겠다.

유명인 몇 사람이 옹호한다고 기본소득이 정당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공약으로 발표했으니 무를 수도 없다. 이재명과 기본소득은 이제 한 몸이다.

◇교황은 이 지사 편

인류애의 화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힘껏 옹호한다. 코로나 위기가 배경이다. 2020년 부활절(4월12일)에 '대중운동(Popular Movements)'에 보낸 서한에서 교황은 "지금이야말로 보편적 기본임금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대중운동'은 교황의 주도로 전세계에 설립된 가톨릭의 풀뿌리 조직이다.

기본임금은 기본소득으로 진화한다. 2020년 12월 교황은 전기작가인 어스틴 아이버레이와 함께 'Let us dream'이란 책을 냈다(사이먼 앤 슈스터 간). 여기서 교황은 "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같은 개념을 탐색할 때가 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UBI를 '모든 시민에게 조건없이 주는 균등 지급'으로 정의했다. 교황이 말한 기본임금과 기본소득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임금이든 소득이든 노동자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자는 게 교황의 뜻이다.

따라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말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을 인용하는 것은 타당하다.



◇저커버그도 이 지사 편

페이스북 창업자인 저커버그는 2017년 5월 하버드대 졸업식 치사에서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세대마다 평등에 대한 개념을 새로 써왔다며 "우리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아이디어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 알래스카를 찾은 저커버그는 기본소득 논의를 이어갔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영구기금배당(PFD·Permanent Fund Dividend), 곧 알래스카판 기본소득을 소개했다. 자원이 풍부한 알래스카는 1976년 주헌법에 따라 알래스카영구기금(APF·Alaska Permanent Fund)을 만들어 석유에서 발생한 수익을 조건없이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기금은 640억달러(약 72조원) 규모로, 매년 평균 1600달러(약 180만원)을 모든 주민에게 거저 준다.

따라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말할 때 저커버그를 인용하는 것은 타당하다.

◇머스크도 찬동

테슬라 CEO인 괴짜 머스크가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배경에는 자동화가 있다. 언젠가 기계가 사람 일자리를 앗아가는 시대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2016년 11월 머스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자동화 때문에 결국은 우리가 보편적 기본소득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엔 버니스 킹의 트위터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기본소득을 두둔했다. 버니스 킹은 미국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딸이다. 버니스는 로스앤젤레스·애틀랜타 등 9곳이 '보장소득을 위한 시장 모임'을 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버니스는 "보편적 기본소득(연간 보장소득)은 아버지(킹 목사)가 추천했던 것"이라고 썼다. 이를 본 머스크는 "아주 많이 동의한다(Very much agree)"고 화답했다.

따라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말할 때 머스크를 인용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마틴 포드가 대부

저커버그, 머스크 등 혁신 기업가들이 기본소득에 꽂힌 데는 마틴 포드의 영향이 컸다. 실리콘밸리 혁신 창업자 중 한 명인 포드는 2015년 '로봇의 부상(Rise of the Robots)'이란 책을 냈다. "기계는 이제까지 수행해오던 도구의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근로자의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다"는 게 포드의 분석이다. 기계가 노동자가 되면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일자리에서 쫓겨나면 소득이 없다. 그 대안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혁신 창업가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을 간판 공약으로 삼았다. 18세 이상 모든 미국 성인에게 월 10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중도 사퇴하면서 공약은 무산됐지만, 양은 미국 정치권에 기본소득 논의의 씨를 뿌렸다. 그는 '로봇의 부상'을 읽은 뒤 기본소득 주창자가 됐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게이츠는 결이 달라

2019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게이츠는 사회적 토론 사이트 레딧(Reddit)에서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비용이 얼마나 들지 따져볼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곤궁한 이들에게 혜택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그냥 수표를 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2년 전인 2017년에도 게이츠는 역시 레딧에서 기본소득에 반대는 아니지만 아직 이르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조차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 좋을 만큼 부유하지 않다. 그때까지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ITC는 저소득층에 세금 환급 형태로 근로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말할 때 게이츠를 인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반대파는 차고 넘친다

교황과 저커버그, 머스크가 기본소득에 긍정적이라고 해서 이 정책이 무오류성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파는 차고 넘친다. 심지어 이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이견이 속출한다.

기본소득 정책이 책상 위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도 치명적인 약점이다. 주요국 가운데 아직 기본소득을 본격 도입한 곳은 없다. 천연자원이 풍족한 알래스카는 참고용이지 모델은 아니다. 인구(약 71만명)도 서울 송파구(약 67만명)보다 조금 많은 정도다.

이 지사에게 기본소득은 양날의 칼이다. 대선 정책 논쟁의 주도권을 쥔 것은 플러스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기본소득을 말하려면 이재명을 말해야 한다.
동시에 기본소득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은 큰 교훈을 남겼다.
유권자들은 현장 검증을 생략한 어설픈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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