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의 시대, 분야를 넘나드는 MZ세대의 속사정
2021.07.25 14:11
수정 : 2021.07.25 14:15기사원문
"통번역을 본업으로 한 지는 8년, 스터디카페를 창업해서 병행한 지는 4년 4개월 정도 됐어요.”
80년대생 배진영씨는 대학 졸업 후 통번역 프리랜서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수입이 불안정한 특수고용직 특성상 추가 소득을 마련하기 위해 스터디카페를 창업했다. 창업박람회를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고,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창업 교육을 받는 등 혼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여정은 고되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배 씨처럼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가 늘고 있다. 잡코리아 알바몬과 긱몬이 지난 7월 1300여명의 MZ 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0%정도가 이미 부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코로나19로 고용불안이 악화되면서 MZ세대 사이에서 다양한 수입원을 찾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전했다.
■ "회사 다니다가 추가 소득 찾아 나서"
‘N잡러’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 일자리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직장의 임금은 월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73.3%에 달했다. 물가, 집값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입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과반수인 셈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 현황에 대해) 최근 정년을 보장해 주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라며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가세하면서 비대면 환경에서도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회사 월급 외에 다른 수입원을 찾다가 K-POP 소개 채널을 개설한 28세 유튜버 Hei씨는 현재 6천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본인의 특기를 살려 최근에는 해외 가수의 노래를 커버하는 등 사업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그는 “N잡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추가 수입원 확보”라며 부업을 하는 이유를 밝혔다. 다만, “두 개의 직업을 병행하다 보니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릴 때도 있고,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며 N잡 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MZ세대 직장인들이 여가를 포기하면서까지 N잡에 매달리는 현상은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청년시민단체 대표 류기환(27)씨는 “현 시대 청년들은 ‘평생 직장’보다는 ‘평생 직업’에 가치를 두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분위기”라며 “추가 소득으로 재테크를 하는 등 다양한 경로에서 얻은 소득으로 재무 설계를 하는 청년들이 주변에 많다”고 언급했다.
■ "소득도 중요하지만, 자아실현도 중요해"
유튜버 Hei처럼 온라인 플랫폼에서 N잡을 하는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를 합성한 신조어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근무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본인이 매력을 떨칠 수 있는 분야라면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1인 미디어의 발달은 ‘매력’이 ‘자본’이 되는 시대를 앞당겼다. 하지만 N잡러에게는 자본 즉, 돈벌이가 전부가 아니다. 이들에겐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아실현’도 중요하다.
SNS 플랫폼에서 디자이너 겸 뷰티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김영채(26)씨는 “나의 손재주를 발휘해 만든 콘텐츠가 인스타그램 팔로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N잡이 주는 성취감을 언급했다. 과거 김 씨는 카페를 창업하고 본인의 작품을 판매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제2의 길로 뷰티크리에이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인의 '미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앞으로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 뷰티 콘텐츠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싶다”며 ‘프로N잡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way309@fnnews.com 우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