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의 정석? 한소희·송강의 ‘알고 있지만’
2021.08.01 09:00
수정 : 2021.08.01 09: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JTBC 토요드라마 ‘알고있지만’에서 박재언과 유나비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불꽃이 튄 사이다. 여자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수려한 외모에 친절이 몸에 밴 박재언은 여자를 유혹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한 ‘연잘남’이다.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으면서 연애를 게임처럼 즐겨온 인물. 그는 친구 이상의 친밀감을 원하지만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되는 것은 경계한다.
반면 유나비는 매사 진지하고 성실한 성격이다. 그는 한사람과의 충실한 관계를 선호하며 바람둥이를 경계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나비처럼 살포시 다가온 매력남, 박재언에게 훅 빠지고 만다. 자신의 온 신경을 자극하고 긴장시키는 이 남자와 키스를 할까, 말까. 섹스를 할까, 말까. 좋아하게 됐다고 말할까, 말까. 그리고 내겐 너무 위험한 그와의 관계를 이어갈까, 말까. 이것이 20대 여대생, 유나비의 최대 고민이다.
‘알고있지만’은 비록 본방 시청률은 2%대 이하에 불과하나 넷플릭스, 티빙 등에서 20대 여성이 특히 즐겨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리밍 영상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대만, 태국 총 7개국에서 넷플릭스 TV Show 카테고리 부문 1위를 석권했다. 일본과 홍콩에서 2위를 차지했고 월드와이드 TV쇼 차트에서도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명의 네이버웹툰이 원작이며 ‘부부의 세계’로 스타덤에 오른 한소희, ‘넷플릭스의 아들’로 통하는 송강,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두 동갑내기 배우가 주인공이라 특히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라이징스타, 채종협이 송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 중이다. 요즘 애청자의 최대 관심사는 한소희가 누굴 선택할지 여부다. 송강을 지지하는 한 시청자는 “송강이 원작처럼 흑화된다면, JTBC를 손절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알고있지만’은 외부의 크고 작은 사건이 연애의 장애물이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이 그 원인이라는 점이 기존의 멜로드라마와 다른 재미를 준다. 극 초반 일부 회차에 한해 19금 딱지를 달았을 정도로 공들여 찍은 멜로신도 볼거리. 제작진은 앞서 송강과 한소희가 1~2화 주요장면을 함께 보는 메이킹 영상을 공개했는데 송강이 “야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표현수위가 과감했다.
특히 키스신이 흥미로웠다. 드라마에서 키스신은 둘 중 한 사람, 보통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다가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둘이 좋아하는 사이라면, 예고 없이 다가온 입술을 받아들이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달랐다.
외국에는 이른 바 ‘9대 1 법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상대와 키스(혹은 스킨십)를 하고 싶을 때 90프로만 다가갔다가 멈추고 나머지 10%의 거리를 좁힐지 여부는 상대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극중 한소희와 송강이 이 법칙을 엄수한 것은 아니나, 근접한 사례로 꼽힐만하다. 극중 키스신은 모두 유나비의 의사 표시로 시작된다. 유나비가 꾼 꿈에서만 예외다. 유나비가 먼저 입술을 가볍게 갖다 댔다 떼면, 박재언이 몇 초 뒤 이에 응하는 방식으로 키스신이 전개된다.
과거엔 남자가 여자에게 거칠게 키스를 퍼붓는 게 애정의 표시로 용인됐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요즘, 멜로신의 표현에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또 오해영’에서 에릭과 서현진의 골목 싸움 키스신이 여론의 뭇매를 받았던 것이 한 사례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하는 법’ 등을 집필한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는 “키스도 감정을 전달하는 하나의 언어로, 키스 예절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키스에 동의했다고 다른 스킨십까지 동의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상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거듭 요구하지 않는 것도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누구나 상처받고 싶지 않고 더 많이 사랑받길 원한다. 유나비와 박재언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타의 모범이 될 손짓과 몸짓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연애를 가로막는 것은, 몸의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다. 상대를 향한 내 마음보다 주위의 것들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배신에 깊은 상처를 입은 유나비는 특히 박재언을 판단함에 있어 그의 행동이나 말보다 외부의 시선을 더 신뢰한다. 그는 늘 박재언을 바람둥이라는 틀에서 바라보며 그를 믿지 않는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박재언은 회피와 방관을 무기삼아 자신을 보호한다. 낯선 남자에게 박재언이 두들겨 맞은 어느 밤, 유나비는 이 사건과 관련해 박재언에게 전후사정을 묻지 않고, 박재언 역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 남자의 약혼녀가 박재언에게 사과한 것으로 미뤄 둘이 깊은 관계였는지는 의문이나, 명확하지 않다.
박재언보다 더 나은 남자친구로 여겨지는 동급생 남규현 역시 몸을 사리기는 마찬가지. 좋아하는 여자와 극적으로 사귀게 됐는데도 자신보다 자유분방한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자존심 상해" 그것이 그의 진심이다.
이러듯 모두 상대와 내 사랑의 크기를 비교하며, 속마음을 감추기 바쁘다. 어쩌면 이는 살아갈 날이 아주 길게 남은, 청춘의 특권일지도.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살 날이 별로 남지 않은 70대 해녀는 세상이 알면 온갖 욕을 다먹을 상황인데도, 30대 다큐멘터리 PD와 거침없이 사랑하니까.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