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못 땄다고 맹비난하는 中 vs "No메달이면 어때" 즐기는 韓
2021.08.04 11:02
수정 : 2021.08.04 11:0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강해지는 중국의 소분홍(小粉紅·리틀 핑크)과 개인주의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한국의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한국과 중국의 젊은 세대들의 문화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그들을 나타낸다.
■은메달 딴 선수에 "나라를 망쳤다"
4일 영국의 BBC 등에 따르면 중국은 금메달 30개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대중은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애국심이 없는 자 또는 반역자로 매도하고 있다.
지난 달 26일 2020 도쿄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결승에서 중국 대표팀 류스원(여자 세계 7위)와 쉬신(남자 세계 2위)가 은메달이라는 준수한 성적에도 중국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중국의 누리꾼들은 "탁구 혼합 복식팀이 나라를 망쳤다"며 선수들을 공격했다.
배드민턴 선수들에게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은 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대만에 금메달을 내줬는데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집중 공격이 가해졌다. 웨이보의 한 사용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너희들은 전혀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금메달을 손에 쥐었음에도 과거 나이키 신발을 모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중국에선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다.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중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양첸은 과거 나이키 컬렉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적 있지만, 일부 중국 누리꾼은 이에 대해 "중국 선수사 왜 나이키 신발을 모으는가? 보이콧를 오히려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일삼았다. 이후 양첸은 과거 컬렉션 사진을 삭제했다.
온라인상에서 이런 분위기를 이끄는 이들은 소위 소분홍들이다. ‘작은 분홍색’이란 뜻으로 맹목적 애국주의를 분출하며 공격적 성향을 띤 중국의 누리꾼 집단을 이른다. 주로 1990년대~2000년대에 출생한 이들이 주축을 이룬다.
네달란드 라이덴 아시아 센터 소장인 플로리안 슈나이더 박사는 "중국인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개인의 기량은 물론 국가의 존엄성을 떨치는 수단"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심지어 국가를 배신한 배신자로 매도당한다"고 진단했다.
■'비인기·노(No)메달'에도 드라마 있다면 응원
1등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던 우리나라의 올림픽 관전 문화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달라지고 있다. 은메달을 따면 선수가 비난 받던 과거와는 이별하고, 도전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대회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흐름이 이렇다 보니 이전과 달리 ‘노메달’인 선수도 관심 대상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어 4위를 기록한 우상혁 선수다. 우 선수는 3위 선수와 2㎝ 차이로 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그에게는 질책보다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우 선수가 “높이 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남긴 SNS 소감에는 “내 마음속 금메달이다”, “이번 올림픽 최고의 선수다”와 같은 댓글이 줄이었다.
대중의 관심은 인기 종목 선수나 어린 선수들에게만 쏠리지 않는다. 남자 요트 하지민(32) 선수나 ‘아름다운 꼴찌’ 럭비 대표팀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도 응원이 잇따른다.
효자 종목으로 꼽혔던 유도·레슬링·태권도 등이 부진한 성적이라고 해서 이를 꾸짖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아니다.
한편 올림픽에서 선전한 선수들에 꼭 열광해야 하냐는 게시글도 적지 않은 호응을 얻는다. "올림픽 보는데 이긴다 해도 내 인생이랑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우리나라가 이겨도 별로 기쁘지 않다. 메달 따봤자 연금 가져가는 건 선수 본인인데 내가 왜 기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국민이 올림픽 성적을 국가 명운이나 국격과 동일시하던 민족주의적 경향이 과거보다 옅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은 다른 것이고, 스포츠를 통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젊은 세대에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라며 “1등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보다는 저마다 입장에서 자신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올림픽 관전 문화가 바뀐 거 같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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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