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굴서 발견된 여인의 토막시신…무속이 얽힌 살인사건
2021.08.08 06:01
수정 : 2021.08.08 13:22기사원문
(청주=뉴스1) 조준영 기자 = "사장님이 갑자기 일본으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2017년 11월 5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자영업을 하던 A씨는 직원에게 "일본에 급히 가게 됐다. 집과 가게를 내 애인에게 줘라"라는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남기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동선 추적에 들어갔다.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A씨는 60대 애인 B씨와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CCTV에는 A씨와 함께 나갔던 B씨만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는 장면도 담겼다.
주변인을 대상으로 한 탐문 수사 과정에서는 연인 사이인 A씨와 B씨가 평소 금전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정황이 포착됐다.
단순 실종이 강력 사건으로 뒤바뀐 순간이다.
B씨는 유력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실종 신고 접수 하루 뒤인 6일 B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당시 B씨는 경찰에서 "A씨가 일본으로 떠난다고 해서 다퉜고, 휴대전화를 빼앗으니 혼자 집을 나갔다"고 진술했다.
정황만으로 긴급체포를 할 수 없었던 경찰은 다음날 추가 조사를 하기로 하고 B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B씨는 이후 연락이 끊겼다. 수상히 여긴 경찰이 직접 집으로 찾아갔을 때, B씨는 공업용 접착제를 마셔 위급한 상태로 발견됐다.
집 내부에서는 유서 형식 메모가 나왔다. B씨가 쓴 메모에는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모두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음독 3일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유력 용의자가 숨지면서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사라진 A씨를 찾을 단서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경찰은 원점에서 사건을 차근차근 살폈다. 그러던 중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이 사건 내막을 밝힐 퍼즐 조각으로 떠올랐다.
무속신앙과 관련 있는 B씨는 행적을 묻는 말에 "A씨가 사라져 답답한 마음에 고향인 보은 내북면 쪽으로 기도를 다녀왔다"고 답했었다.
'보은 고향', '기도 장소'. 범위가 좁혀지자 기도 장소로 활용될 만한 곳을 찾는데 경찰 수사력이 모아졌다.
며칠에 걸쳐 이뤄진 수색 끝에 B씨 고향 동네에 있는 한 토굴이 범행 연관 장소로 특정됐다.
같은 달 11일 형사 인력을 투입한 경찰은 흙으로 꼼꼼하게 가려진 토굴 입구 뒤편에서 A씨 시신을 찾아냈다.
당시 A씨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마대자루 3개에 나눠 담겨 있었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숨진 유력 용의자 B씨가 A씨를 살해했다고 결론 낼 직접 증거는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 A씨 사인이 경부 압박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으나 범인 특정 근거로는 부족했다.
시신 발견 현장에서 확보해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한 검사물에서도 B씨 DNA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정밀감식을 벌여 B씨 집과 화물차 적재함에서 각각 잘린 노끈과 흙이 묻어 있는 삽을 확보했다.
추가 분석에서는 집에서 발견된 노끈과 A씨 시신을 담은 마대자루에 묶여있던 노끈 절단면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삽에 묻어 있던 흙은 시신이 나온 토굴 내 토양과 성분이 같다는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해당 검사물을 숨진 용의자 B씨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로 보고 '공소권 없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보은 토굴 40대 여성 토막시신 유기 사건'. 2017년 겨울 한 자락, 충북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유력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 서류 캐비닛에 ‘영구 미제’로 분류될 뻔했으나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전모가 밝혀졌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의자는 범행 후 A씨로 가장해 그 지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치밀하게 은폐를 시도했다"며 "단서마저 한정적인 탓에 수사 전 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