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왕'의 몰락…주식 '영끌' 결국 가족 목숨까지
2021.08.09 05:34
수정 : 2021.08.09 08:59기사원문
(전북=뉴스1) 박슬용 기자 = “나 믿지, 대납할 선박보험료 빌려주면 월 2% 이자 줄게”
주식투자에 실패하자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가족과 친한 지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 94억원을 가로챈 사건이 벌어졌다.
사기행각을 벌인 A씨(43·여)는 1997년 1월 한 보험회사에 입사한 뒤 2009년 지점장까지 승진했다. 12년만에 지점장까지 승진한 A씨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자랑거리였다.
잘나가던 A씨의 불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부터 무리한 주식투자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A씨는 주식도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A씨는 주식투자로 지속적으로 손실을 보게 됐다. 주식투자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는 더 큰 투자금액이 필요하다 생각한 A씨는 가족들과 지인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것을 결심했다.
지난 2013년 사촌 동서인 피해자 B씨에게 A씨는 “회사 선박보험료를 대납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대납할 보험료를 빌려주면 월 2%의 이자를 지급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심을 피하기 위해 A씨는 “원금은 필요시 연락하면 1개월 이내로 해지 처리해 상환해 주겠다”고 B씨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A씨가 제시한 선박보험 계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A씨는 B씨에게 받은 돈을 주식투자 등 개인적 명목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즉 A씨는 B씨에게 정상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 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
A씨의 말에 속은 피해자 B씨는 2013년부터 2020년 7월까지 84회에 걸쳐 43억 2100만원을 A씨에게 투자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A씨는 지난해까지 다른 친족과 지인들에게서 50억원이라는 투자 받았다.
혈연과 지연, 보험사 지점장이라는 직책 등으로 신뢰를 쌓아 놓은 A씨의 거짓말에 가족과 지인들은 모두 속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평생 모아둔 돈을 A씨에게 모두 내주고 말았다.
A씨는 피해자들에게 투자받은 돈을 주식투자에 탕진했다. 남은 돈 일부는 피해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해 7월 지속적인 주식투자 실패 등으로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돈이 바닥을 보이자 A씨는 도주했다가 경찰의 끈질긴 추격으로 붙잡혔다.
A씨의 사기 행각을 전해들은 가족들과 지인들은 망연자실해 했다. A씨에 대한 신뢰와 함께 평생 모은 수십억원의 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 대부분은 현재 전 재산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중 49억원을 A씨에게 투자했던 가족이자 피해자인 B씨는 지난해 10월 극단적 선택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피해자 대부분이 전 재산을 잃었다. 또 피해자들은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있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사와 피고인은 양형부당 등 이유로 항소했다.
2심은 사기 피해 충격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 B씨의 유족들과 A씨가 합의했다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형을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높은 수익금과 원금을 보장해 줄 것처럼 다수의 피해자들을 속여 94억원을 가로챘다”며 “특히 피해자들과 친족관계에 있거나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범행을 저지른 점과 피해자 1명이 이 사건 충격으로 목숨을 끊은 점 등에 비춰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항소심에서 사건 충격으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한 점과 피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피고인의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