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4발 맞고도 내달려"…긴박했던 '슈퍼멧돼지' 추격전
2021.08.13 13:02
수정 : 2021.08.13 14:31기사원문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탕! 탕! 탕! 탕! 탕!
지난 1일 오후 9시30분쯤 제주시 아라동 한 수박밭에서 5발의 총성이 울렸다.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지회 회원으로 구성된 멧돼지 포획단이 무려 1년간 쫓던 거구의 멧돼지를 잡는 순간이었다.
이 멧돼지는 지난달 초부터 아라동에 있는 한 수박밭에 출몰해 며칠동안 수박을 갉아먹는 등 피해를 입혔다.
시는 7월 중순부터 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엽사들로 포획단을 구성했다.
그런데 정작 포획단이 꾸려지자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멧돼지가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나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 멧돼지는 크기와 습성으로 볼 때 포획단이 1년 전부터 쫓아왔던 대형급 멧돼지로 추정됐다.
포획단이 2인1조로 교대하며 잠복근무를 하던 그날. 드디어 검은 형체가 수박밭에 모습을 드러냈다.
포획단은 만약의 사고를 우려해 두 명 중 한 명만 총기를 지닌다.
사람을 눈치챈 멧돼지가 달아나자 포획단은 약 100m를 추격했다.
장호진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지회 사무국장은 "수박밭이 도로와 밀접해 있는데 총기를 쏠 때는 안전문제때문에 주변 지형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해 멧돼지가 보인다고 바로 총을 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5연발 산탄총 중 4발이 멧돼지의 몸에 날아갔지만 도주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한 발이 급소인 귀밑 목덜미에 꽂히면서 멧돼지는 밭에 고꾸라졌다.
쓰러진 멧돼지를 살펴보니 총상 대부분이 엉덩이 쪽에 있었다. 보통 멧돼지라면 엉덩이나 다리에 맞아도 쓰러졌겠지만 이놈은 보통 멧돼지가 아니었다.
잡은 멧돼지는 230㎏으로 야생멧돼지 중 대형급에 속한다. 일반돼지의 두 배정도 크기다. 지난 9일 바리메 오름에서 붙잡은 멧돼지 무게가 80㎏이니 수박밭 멧돼지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장 사무국장은 "여름철이라 살이 빠져서 그렇지 실제 크기만 보면 300㎏급이었다"며 "20년 동안 협회에서 엽사로 활동했지만 이 정도 크기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멧돼지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시는 오는 10월까지 멧돼지 출몰이 잦은 바리메 오름, 골프장 3곳(타미우스, 엘리시안, 골프존 카운티 오라)에서 집중적으로 야간포획을 할 계획이다.
올해 들어 포획단을 통해 현재까지 제주시에 잡힌 멧돼지는 총 43마리다.
한편 제주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2017년 기준 170마리 수준이었으나 번식 속도가 빠르고 포획수를 고려하면 현재는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토종 제주 멧돼지는 1900년대에 멸종됐고 지금 출몰하는 멧돼지들은 2000년대 농가에서 가축용으로 사육되다 탈출하거나 방사된 개체들로 추정된다.
2012년에는 포획된 멧돼지의 DNA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야생멧돼지와는 다른 중국에서 들어온 가축용 멧돼지로 밝혀지기도 했다.
농작물을 중심으로 멧돼지 피해 신고도 매해 꾸준히 발생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고 2016년 10월에는 서귀포시 도로에서 산책하던 50대 남성이 멧돼지 습격을 받아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