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효 캐스팅은 제가 만난 첫번째 기적"(인터뷰)
2021.08.20 07:00
수정 : 2021.08.20 06: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제가 만난 첫 번째 기적입니다.” 동명소설 원작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이영숙 작가가 송지효 캐스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작가는 서면인터뷰에서 “(송지효 배우 캐스팅은) 솔직히 제가 만난 첫 번째 기적"이라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갈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기다려주셨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2019년에 원작 소설의 드라마화를 제안 받고, 영상화를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면서 ‘희라’라는 캐릭터가 가진 ‘아우라’에 비해, 극 속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어떤 배우님이 선택해 주실지 걱정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송지효 배우께서 ‘희라’역을 하기로 했다는 제작사 양광덕 대표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처음에는 솔직히 믿기지 않았고요. 제가 로또도 안사면서 이제까지 아껴 모은 행운(?)이 당첨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송지효 배우님이 계셨기에 남지현 배우님, 채종협 배우님, 소재현, 이수현 감독님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부담을 덜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송지효는 이번 드라마에서 예능에서 보여준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을 벗고 오랜만에 배우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서양동화 속 고약한 이미지의 마녀를 패션 감각 뛰어난 현대판 ‘지니’이자 인생 상담사로 탈바꿈시켰다. 화려한 스타일과 중저음의 목소리로 완성된 마녀 ‘희라’는 냉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쳤고, 차가운 듯 인간적이었다.
이 작가는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스타일, 중성적인 보이스, 연기력, 화면 장악력, 모든 부분이 다 완벽했다”며 “ 특히 인간이었던 희라와 마녀가 되기를 결심한 희라, 현재의 희라까지 감정의 진폭이 큰데,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깊이 있게 표현해줬다”고 평했다.
“사실, 희라의 진짜 정체는 7,8회에 와서야 밝혀지잖아요. 직설적인 희라의 대사들은 타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때때로 자기 자신을 향한 중의적이고 자조적인 표현들이 있었는데, 송지효 배우께서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디테일을 살리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이 작가는 앞서 드라마 전체 리딩 때 배우 송지효에게 '이제까지 중 가장 아름다우셨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그는 "제 기대가 실현된 느낌이었다"며 "렌즈도 너무 잘 어울리고 원래도 미인이시지만, 촬영과 조명, 편집과 음악까지 더해져서 ‘마녀 희라’의 스타일링이 너무 잘 된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다음은 이영숙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 드라마 작가로서 소설 원작에서 느낀 매력은 무엇인가요? 원작의 어떤 점을 살리는데 중점을 뒀나요?
공감 가는 에피소드가 있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마법 같은 일’이라는 주제의식도 좋았고 소원에 대가가 있으며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대가가 꼭 행복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아이러니함도 좋았어요.
원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큰 방향성이 정해진 후엔 원작이 가진 감정들의 크기를 키우고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을 주인공인 진과 희라, 길용의 서사 안에 안착시키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원작과 에피소드의 순서가 다른 것도 그 이유가 컸어요. 특히, 원작 속 ‘희라의 저주로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박선과 오대표라는, 원작에 없던 인물들을 추가했습니다.
▲ 길용 역시 원작에 없는 캐릭터인데요.
원작에 등장하는 길용은 드라마로 따지면 (왕따를 당하는) 영재 같은 캐릭터였어요. 영재만의 매력이 있지만, 진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좀 더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진은 감정 변화가 많고 성장해야 하는 인물이니 그녀 옆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진이 의지할 수 있고 멜로적인 느낌을 강화해줄 그런 인물이 필요했죠.
▲ 진-길용의 관계를 제2의 희라-오대표로 만들었는데요.
‘서포터’라는 존재 자체가 원작에 없기 때문에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희라와 오대표와는 다른 제2의 마녀와 서포터가 탄생하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마녀 역시 ‘박선(지수원 배우)-희라-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박선, 그 고리를 깨려고 노력했던 희라, 그리고 끝내 그 고리를 깨는 진까지, 점차 성장하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 희라와 진, 그리고 진을 키워준 엄마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공을 들였는데요. 같은 남자에게 배신당한 두 여자의 모성애가 연적 관계였던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이 부분 역시 저한테 중요한 화두였어요. ‘엄마’라는 존재는 늘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잖아요? 기른 정과 낳은 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말에 힘이 있다고 믿는 편이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고 믿는 편입니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빚을 지고 사는데.... 진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마녀로 성장하듯 애숙(소희정)은 희라가 있었기에 진을 만나 ‘살 수 있었고’ 희라는 애숙이 있었기에 진을 보내고도 ‘살 수 있었던’ 그녀들의 연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의 연대의 결과물이 진인 거죠.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아이가 두 사람의 연대와 보호 속에서 결국 자신을 깨닫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이길 바랐어요.
▲ 송지효 배우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들 하지”라는 대사가 특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작가 입장에서 가장 좋아한다거나 고민하고 쓴 대사를 꼽는다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주로 하다 드라마 대본은 처음 작업했는데 (두 장르의 대사) 결이 조금 달랐어요. 그래서 모든 대사가 어려웠고 모든 대사를 매 순간 고민하면서 썼습니다. 원작에 있던 대사 중 좋은 대사 역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요. 굳이 꼽아야 한다면.. 마지막 진의 나레이션을 꼽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의미 없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시간들, 모든 사람들,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이끌고 손 내밀어주고 있었다.’ ‘루프리텔캄.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스스로가 믿을수록, 그렇게 믿을수록! 끝내 이루어지는 마법! 그런 마법은 분명 존재한다. 당신의 삶에도 예외는 아니다.’
너무 힘든 시기잖아요. 어딘가에서 ‘마녀식당을 오세요’을 보시고 사랑해주시는 누군가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녀가 동화 속 악녀가 아니라 억울하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상담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하나의 직업처럼, 새로운 세대의 마녀가 이전 세대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합니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는 완전한 판타지가 아닌, 현실과 판타지 양쪽을 오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녀’라는 존재를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갑자기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존재로 보이기보단, 보이지 않는 힘으로 대를 이어가는 하나의 직업처럼 보이길 바랐고, ‘천직’의 ‘직’와 ‘업보’의 ‘업’이 합쳐진 느낌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너무 고전적이라거나 그렇다고 너무 우리나라의 정서에 안 맞는 이질적인 느낌이 아니었으면 했는데 그 부분은 소재현, 이수현 감독님의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촬영, 조명, 음악, 편집, 미술 감독님 등 최고의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기대 이상으로 잘 표현된 듯합니다.
▲ 진과 길용의 로맨스가 아쉽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남지현 배우는 원래부터 팬이었고 채종협 배우는 ‘스토브 리그’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두 분의 케미가 너무 예쁘고 좋아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잖아요? 저도 진과 길용의 로맨스가 짧아서 솔직히 많이 아쉽습니다. 기획 초기에는 둘의 로맨틱 무드를 단계별로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에는 담아야 할 이야기가 많았고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전체 스토리와 사연자의 에피소드까지 살려서 풀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오프닝 내레이션(‘선택해. 지금 당장!’)처럼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고 할까요.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순 있지만,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진의 직업을 영화 홍보 마케터로 설정했는데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 투영됐나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는 판타지이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만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최대한 빈틈을 줄이고 싶었어요. 기획 초반부터 진의 직업을 영화 홍보 마케터로 설정한 이유는 제가 가장 잘 아는, 제 전직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직업군을 선택할 경우, 혹시나 빈틈이 보여 현실과 판타지의 줄타기에 영향을 미칠까 봐 염려되었거든요.
▲ 마지막엔 작가가 소원을 빌러 오는 설정을 넣었는데요.
감독님께서 마지막 손님으로 한지은 배우님이 특별출연한다고 살짝 귀띔해주셨는데, 원래 한지은 배우님을 좋아했던 터라 조금이라도 배우님에게 걸맞은 사연을 가진 의미 있는 손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이 모든 이야기가 한지은 배우님이 마녀식당에 가서 진에게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그 손끝에서 탄생한 소설이면 좋을 것 같았죠. 그러니까, 원작 소설을 쓰신 구상희 작가님으로 구현해서 마무리하면 어떨까 했던 거죠. 한지은 배우님께서 너무 실감 나게 표현해주셔서,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완성된 것 같습니다.
▲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고, 얻는 게 있으며 잃는 게 있다’는 걸 평소엔 잊고 사는데, 이 드라마가 인생사 진리를 새삼 환기시켜줘서 좋았어요. 특히 소원이 이뤄지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선미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잃는다는 것은 뭔가를 잃으면 또 뭔가를 얻는다는 말과 같아요. 저도 평소에 늘 ‘잃었던’ 순간만 생각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편인데, 누구나 평생 지는 게임만 하고 살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잃었던 만큼 분명 얻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 순간에는 못 느낄 수 있겠지만. 저만해도 전에 썼던 드라마가 촬영을 앞두고 엎어졌기 때문에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를 만날 수 있었고요. 아마 선미도 잃은 게 많은 만큼, 언젠가 더 큰 행복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마녀식당을 오세요’의 팬으로서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시즌2가 만들어지고 다시 작가로 참여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꼭 다루고 싶은가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에서는 이미 레벨을 달성한 희라와 오대표가 등장했기 때문에 둘의 서툴렀던 시절은 다뤄지지 않았어요. 만약 시즌2의 제작이 결정되고 다시 작가로 참여하게 된다면, 서투른 마녀와 서포터, 그리고 진과 길용의 풋풋한 모습들이 다뤄지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이 치는 사고 때문에 희라는 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끼어들어야 할테고 오대표는 그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뺄 테고…어쩜 희라의 힘을 욕심내는 새로운 빌런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제 상상이지만.
▲ 첫 드라마 데뷔작인데, 종영 소감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에 출연해주신 모든 배우님들, 두 분 감독님, 스태프 여러분, 보이지 않게 뒤에서 힘써주신 관계자들, 늘 응원해주셨던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가, 보시는 시청자분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닿았다면, 그건 모두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