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자영업…'위드 코로나' 진지한 검토를
2021.08.23 10:43
수정 : 2021.08.23 10:43기사원문
델타변이가 끝 아닐 수도
英·싱가포르 과감한 선택
백신 접종률이 최대 관건
[파이낸셜뉴스] 문재인정부는 자영업자들과 악연이다. 처음엔 최저임금 때문에 얼굴을 붉혔고, 지금은 코로나 규제 때문에 싸우는 중이다. 문 정부는 진보를 자처한다.
◇한국 자영업의 특성
통계청에 따르면 비임금근로자, 곧 자영업 종사자는 660만명(6월 기준)으로 집계된다. 무급 가족 종사자 108만명을 합한 숫자다.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유달리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또는 최근 집계를 기준으로 한국은 자영업 비중이 24.6%에 달한다. 취업자 넷 중 한 명 꼴이다. 이는 OECD 6위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한국 자영업의 특성이 더 도드라진다. 이탈리아만 비중이 22.5%로 우리와 비슷할 뿐 영국·프랑스·일본은 10%대, 미국·캐나다·독일은 한자릿수에 머문다.
한국은 왜 이처럼 자영업 비중이 높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주요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우린 회사를 나오면 당장 밥줄이 끊어질까 걱정이다. 그래서 퇴직금을 털어 치킨집, 카페, 음식점을 차린다. 나라에서 주는 복지를 믿지 못하니까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선 셈이다. 최근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들까지 자영업 창업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은 다 '사장님'이다. 그래서 노조가 없다. 이익을 대변할 법정단체로는 2014년에 출범한 소상공인연합회가 있다. 코로나 이후에 나온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22개 업종별 단체가 모인 임의단체일 뿐이다. 강성 노조가 없어서일까, 자영업자들은 동네북이 됐다.
◇최저임금 희생양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국정 기조로 삼았다. 간판 정책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였다. 그 불똥이 근근히 살아가던 자영업자들한테 튀었다. 을과 을의 싸움이 시작됐다. 정부는 만만한 자영업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정부는 비겁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려면,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점주·본사 간 관계부터 바로잡는 게 순서다. 점주 지갑이 두둑해져야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 하지만 본사는 가만 두고 정부는 들입다 점주만 때렸다. 점주들이 무슨 갑부라고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두자릿수나 올리나.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소주성의 최저임금 정책만큼은 맹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장기판의 졸이 된 자영업
최저임금 소동이 가라앉을만 하니까 이번엔 코로나 폭탄이 터졌다. 그 충격은 최저임금 저리 가라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본격 상륙한 뒤 자영업은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됐다. 방역 당국은 걸핏하면 헬스클럽 문을 닫았고, 카페에 앉지 못하게 했다. 식당은 일행 4명까지만 같이 앉도록 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7월12일)된 뒤부턴 오후 6시 넘어 식당 동석자가 2명으로 줄었다.
정부와 정치권의 노고를 경시할 생각은 없다. 추경을 짤 때마다 큰 몫은 자영업자 지원용으로 할당된다. 최근에도 정부는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 수조원을 풀었다. 국회는 지난해 2월 소상공인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지난 여름엔 소상공인보호지원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정부의 집합금지·영업제한으로 생긴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는 법이다. 이 법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의 애끓는 아우성은 여전하다. 아무리 추경에서 지원하고 손실을 보상해도 가게 문을 늦도록 여는 것만은 못하기 때문이다. 자영업 비대위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4단계 거리두기는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더는 버틸 힘마저 없는 우리에게 인공호흡기까지 떼어버리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해법은 없나
나라 안팎에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케이블방송 CNN은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와 영국이 둘 다 코로나와 공존 계획을 세우고 있다(Singapore and the UK are both planning to 'live with Covid')"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위드 코로나는 매일 확진자 수를 세는 대신 중환자 관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다.
뉴욕타임스는 "각국은 어떻게 코로나19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썼다(7월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델타변이와 그 이후: 코로나 공존법 배우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델타 변이가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8월13일).
무조건, 당장 위드 코로나로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CNN은 영국의 경우 의학 전문가들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위드 코로나 방침에 깊은 우려를 보인다고 전했다. 또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라는 점, 정부 신뢰가 높다는 점, 전통적으로 시민들이 엄격한 정부 정책를 잘 따른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았다.
우리도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기 전에 따져볼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게 접종률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50%가 넘는 국민들이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2차 접종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방역 당국자는 70% 이상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치는 9월 말 또는 10월 초 위드 코로나 전환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희망고문이 아니길 바란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말대로 하자. 천천히 그러나 진지하게 위드 코로나를 검토해보자. 전문가 의견 수렴은 필수다. 여론 반응도 변수다. 다만 델타 변이가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660만 자영업자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도 깊이 고려했으면 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