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는 아기 버리는 곳 아닌 살리는 곳.. 어쩔 수 없는 선택,엄마들이 가장 가슴 아플 것"
2021.08.30 18:04
수정 : 2021.08.30 18:16기사원문
1896명.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의 수다.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목사 이종락)는 2009년 12월 '영아 임시보호함'(베이비박스)을 처음 설치했다. 입양시설로도 보내지지 않고 버려지는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면 상담사들이 벨 소리를 듣고 즉시 아이를 보호한다. 또 아기를 두고 간 부모를 만나 상담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4명의 베테랑 상담사들이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즉각적인 상담으로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 중 10~15%는 마음을 바꿔 아이를 데려간다. 상담률은 90%를 넘지만 일부 부모는 베이비박스 앞에 택시나 차량을 대기 시켜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도 한다.
임선주 팀장은 "아기 이름이나 생년월일이라도 알고자 쫓아가는 상담사와 도망가는 부모와의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라 살리는 곳이다. CCTV로 보면 본인도 하혈하면서 아이를 꽁꽁 싸매고 와 베이비박스 앞에서 발을 못 떼는 엄마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매의 눈'으로 24시간 CCTV 살펴
파이낸셜 뉴스는 지난 28일 주사랑 공동체를 찾아갔다. 당시 5명의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 3명이 분주히 아이들에게 젖병을 물리고 보채는 아기를 달랬다. 한쪽에는 전국의 기부자들이 보내준 갖가지 육아용품이 있었다. 상황실은 마치 군부대의 지휘통제실을 방불케 했다. 상담사는 모니터에 뜬 CCTV 화면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임 팀장은 "지난해 11월에 한 미혼모가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 위에 아이를 놓고 갔는데, 아이가 새벽 5시 반쯤 죽은 채 발견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 사건 이후) 베이비박스 건물 앞부분부터 방문자가 있을 때 알 수 있도록 알림센서 등을 보완하고 더 자세히 CCTV를 살피게 됐다"고 말했다.
■'선지원 후행정' 필요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담임목사는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낙인찍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아유기 사건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사랑공동체 측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의 65%가 미혼 가정 출신이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10대 미혼모의 아이, 외도로 태어난 아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 또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2012년 시행된 입양특례법이 출생신고제를 강제해 피치 못할 사정을 지닌 산모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3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는 252명으로 전년(79명) 대비 173명 증가했다.
이 목사는 "실명 출산이 어려운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아이를 우선적으로 낳을 수 있게 돕고, 이후 정부가 영아를 보호하고 출생신고와 후견·입양 절차를 밟도록 '선지원 후행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출산제 발의… 찬반 엇갈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호출산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는 실명으로 출산을 하기 어려운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외 없이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현 제도가 영아 유기 등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현재 이 법안은 5월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 심사소위에 상정돼 논의 중이다. 보호출산제를 반대하는 측은 보호출산제가 영아유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 대표는 보호출산제 도입 이전에 병원이 지방자치단체에 아이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과 출생신고 절차 간소화 등 지원 제도에 대한 점검이 먼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 대표는 "임신초기상담부터 지원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위기 임신·출산 지원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채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것은 양육을 포기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며 "태어날 아기의 부모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김준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