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9월 독립운동가' '9월의 6·25 전쟁영웅' 선정

      2021.09.01 02:05   수정 : 2021.09.01 02:0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처는 '9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홍창원 육군 중위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9월의 독립운동가'로 올리버 알 애비슨·로버트 그리어슨·스탠리 에이치 마틴 선생을 선정했다고 8월 31일 밝혔다.

이들 '9월의 독립운동가' 3명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조선총독부에 항의했다. 특히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던 의료선교사들이다.



애비슨 선생은 1890년 6월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부임했다. 3·1운동 부상자들을 치료·보호 및 일본 헌병의 가택 수색과 환자 이송에 저항하고 항의하고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선교사 회의에서 한국인 차별 철폐, 집회·출판의 자유 등을 요구했다.
3·1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한국 독립 봉기에 대한 비망록'을 작성, 미국 장로회와 감리회 등 각 교단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미국 귀환 뒤에도 기독교인 친한회 재무를 맡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독립운동 지원을 호소했다.

그리어슨 선생은 1901년 함경북도 성진(지금의 김책시)에 선교지부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선교 활동을 했다. 이 진료소는 제동병원(濟東病院)으로 발전했다. 성진 지역 3·1운동을 도왔고,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비밀회합 장소로 제공하고, 만세운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사람들을 면회하고 사식도 제공했다. 이동휘 선생을 선교사로 임명,국권회복 운동을 하도록 후원하고 국외 망명도 도왔다.

마틴 선생은 1916년 의료선교사로 용정선교지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북간도 지역에서 제창병원을 건립했다. 1919년 국내 만세 소식을 듣고 '독립선언 축하회' 형식으로 만세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를 제창병원에서 의료진과 함께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는 합동장례를 치러줬다. 이후 제창병원과 그 부속건물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집회 장소로 이용됐고,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각종 자료들이 등사판으로 인쇄했다. 선생의 독립운동 지원 활동은 일제의 정보 보고에도 확인될 만큼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지원에 간도 대한민국회는 1920년 2월 기념패를 수여했다. 정부는 애비슨 선생에게 195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와그리어슨 선생과 마틴 선생에게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9월의 6·25 전쟁영웅 홍창원 육군 중위'는 1951년 6월 육군보병학교 갑종 6기로 입교해 같은 해 11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수도사단 제26연대 5중대 1소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2년 9월 6일 휴전 협상이 지연됨에 따라 중공군은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동부 전선의 돌출부였던 수도 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중대장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홍창원 소대장은 선두에서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방어전을 펼쳤다.

통신이 두절되고 퇴로가 막혀 압도적인 수의 적을 이기지 못할 상황이 되자 오후 9시 홍창원 소대장은 어둠 속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려 자신들의 진지에 포격할 것을 요청했다.

아군 진지로 진입한 적을 격멸하기 위해 진지 위로 포격하는 진내 사격 요청은 자신과 부대원의 희생을 각오한 최후의 결의였다.
많은 적을 사살했지만 그 과정에서 홍창원 소대장과 소대원 전원이 전사했다. 홍창원 소대장을 비롯한 소대원들의 살신성인은 수도 고지를 사수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보훈처는 소개했다.


정부는 그의 위국헌신을 기려 1계급 특진과 함께 1952년 10월 31일에 충무무공훈장, 1954년 10월 25일에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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