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너무 리얼해서… "나도, PTSD가 왔다"
2021.09.03 04:00
수정 : 2021.09.03 07:50기사원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가 군생활의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고발한 드라마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넌 정말 악질이었어" "시즌2 제작해달라"
드라마 공개 후 레진코믹스 실시간 순위 1위에 다시 오른 원작은 연재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밀리터리 예능 '진짜 사나이'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한편에선 20~40대 남성이 특히 이 만화에 빠졌다. 연재 6개월 만에 일평균조회수가 5000회에서 6만회(최고 17만회)로 10배 이상 늘었으며 "슬프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 "가슴을 후벼 판다" 등의 반응을 얻었다.
드라마는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를 필두로 극의 절정을 담당하는 탈영병 조석봉 역의 조현철까지 배우들의 호연, 원작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살린 한준희 감독의 연출력까지 더해져 호평 일색이다. 주인공 안준호(정해인)를 갓 입대한 이등병으로 설정하면서 시청자의 눈높이도 맞췄다. 'D.P.'는 답답한 현실을 피해 입대한 안준호가 얼떨결에 군무이탈체포조에 배정받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선임인 한호열(구교환) 상병과 함께 탈영 병사들을 쫓는다.
"탈영병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가 아니다"라는 김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는 군내 가혹 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지극히 딱한 개인사정 때문에 탈영한 다양한 사연이 펼쳐진다. 두 청춘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이 6부작 드라마는 버디무비면서 수사극의 형식을 띤 로드무비 같았다가 때로는 가슴 뭉클한 휴먼드라마가 되고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고발 드라마로 확장된다. 한 유튜브 이용자는 "호기심에 1화만 보다가 결국 새벽까지 다 봤다"며 "진짜 막판으로 갈수록 마음이 찢어져서 엉엉 울면서 봤는데, 군필 남자라면 한번쯤은 눈물 흘리지 않았을까. 너무 리얼하니까"라고 호평했다. 또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군대 내 따돌림 때문에 생긴 분노조절장애를 고치느라 10년 가까이 고생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고나서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보기 정말 잘했고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극단적인 반응도 더러 있다. 한 네티즌은 과거 선임의 이름을 호명하며 "넌 정말 악질이었어. 잘 살고 있다면 앞으론 저주받는 일이 많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었고, 남편의 군대 선임의 이름을 호명한 한 네티즌은 "우리 신랑 홍천 군생활 괴롭힌 너, 내가 응징할거다"라며 치를 떨었다. 군 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준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하며 시즌2 제작을 촉구한 이들도 있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사회 부조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유머, 슬픔, 감동을 담아내는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사회가 정말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기"를 바랐다. "2부를 꼭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네티즌은 "학생 손자가 군대 갈 즈음엔 제발 인격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 군 생활이 가능하길 바란다"며 "멀쩡했던 아들들이 세습되어 온 군 문화에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썼다.
■"폭력의 악순환 다루면서 보편성도 획득"
'D.P.'는 탈영을 소재로 비단 군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와 폭력의 악순환을 다루면서 보편성도 획득한다. "괴롭힘을 알면서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한 탈영병의 외침은 군대 밖에서도 유효하다. 김보통 작가는 드라마 공개 후 자신에게 온 군유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공개하며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폭력의 악순환에 주목했다. "폭력은 생물과 같아서 가만히 두면 자라나고 분열해 더 많은 폭력으로 증식된다"며 "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과거의 피해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되고, 미래엔 방관자로 바뀌어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순환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폭력에 예민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폭력이 가장 고도화되고 정당화된 군대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관자'라는 부제를 단 6회에서는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해야 하지 말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이 대사는 마치 '가해자가 더 나쁜 짓을 하기 전에, 피해자가 더 벼랑 끝에 내몰리기 전에, 우리사회의 수많은 방관자들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한준희 감독은 "군대뿐 아니라 사람 사는 곳엔 폭력이 존재한다"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사회 곳곳에 만연한 폭력을) 방관하지 않아야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상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즌2는 제작될까? 주연배우 정해인은 "작가님과 감독님이 대본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