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넘어선 깨달음, 고대인의 지혜를 만나다
2021.09.09 18:36
수정 : 2021.09.09 19:18기사원문
'나를 살리는 철학'(클레이하우스 펴냄)의 저자 알베르트 키츨러도 이에 동의한다. 저자가 걸어온 길이 다소 독특하다. 현재 철학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영화 제작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는 '무임 승객'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돌연 본격적으로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관심사가 고대철학으로 향했다. 고대철학 중에서도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인식론이 아니라 실천철학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만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 사상가를 폭넓게 검토하며 내린 결론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 삶의 양상은 비슷하기 때문에 고대의 지혜에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찾을 수 있다"였다.
철학, 그것도 고대철학이라고 한다면 책의 내용이 고리타분할 듯하지만 '나를 살리는 철학'은 술술 잘 읽힌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개성 넘치는 인물을 등장시켜 축의 시대에 활약한 철학자들의 세계관을 복원했다. 이 책은 '디오타마'라는 상담사와 내담자 간 대화로 전개된다. 디오타마는 가상의 인물이나 책의 저자인 알베르트 키츨러로 봐도 무방하겠다. 장이 바뀌면서 내담자가 바뀐다. 내담자가 안고 있는 고민은 다양하다. 물질적 부와 사회적인 성공을 이뤘지만 허무해 하는 인물, 직장 상사와 불화하는 노동자, 갑자기 번아웃이 온 워크홀릭 변호사,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매 순간 별 일 아닌 일에 화를 내는 사람,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 위기에 빠진 부부 등등. 우리 주변에 흔한 고민이라 누구나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고통에 대해 디오타마는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색과 명상을 하도록 권한다. 타인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고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며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화로 유도한다. 대화를 주도하는 건 디오타마이나, 디오타마가 말한 내용의 출처는 고대철학자의 사유다. 각 장의 끝에는 소크라테스나 공자, 고대 인도 철학 경전인 '우파니샤드'의 원문을 실었다.
'나를 살리는 철학'을 읽고 고대철학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영국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쓴 '축의 시대'(교양인 펴냄)를 추천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부터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축의 시대에 성립한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는 다양한 지배 세력과 결합하며 유라시아 역사를 써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은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늘 인류에게 도움을 줬다.
책이 다루는 방대한 시공간만큼 책의 두께도 상당하다. 주석과 색인을 빼고 본문만도 거의 700여쪽에 달한다. 그럴 만하다. 기원전 1600년 전부터 인도, 그리스, 중동, 중국에서 발흥하고 각축한 다양한 세계관에 관해 거의 빠짐없이 다뤘으니, 아무리 간략하게 언급하더라도 이 정도 분량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은 각 종교 전통에 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되, 종교 근본주의에 관해서는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어서 저자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계발하는 현대 사회의 세속적인 분위기도 비판한다. 축의 시대 현자들이라면 자기 긍정과 계발은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 자연재해, 기근, 불평등, 감염병이 인류를 짓누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의 고통이 우리 자신의 고통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자비의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너무 이상적이지만 사실 축의 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들은 대표적으로 공자가 그러했듯,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많은 현자들이 정치와 정부에 깊이 참여했다. 물론 시대는 달라졌다. 이제는 철학의 시대가 아니라 경제의 시대이고 과학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로 돌아가자면, 인간 삶의 조건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우리는 여전히 고대철학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손민규 예스24 MD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