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트랙터 열병식

      2021.09.12 19:58   수정 : 2021.09.12 19:58기사원문
지난주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9·9절)에서 기묘한 풍경이 연출됐다. 심야 열병식에서 탄도미사일 등 첨단무기 대신 방사포를 실은 트랙터가 등장했다. 심지어 군견과 말까지 동원됐다.

평양 김일성광장이란 쇼윈도에 비친 북한의 미묘한 변화상이었다.

러시아·중국 등 사회주의권에선 주기적으로 체제 위용 과시용 열병식을 갖는다. 북한도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전형적 열병식과 달랐다. 과거에 비해 전략무기를 통한 무력시위의 강도가 약했다.
북한은 2012년 건군절 때는 종이로 만든 가짜라는 의혹을 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였었다. 예비군격인 노농적위군과 치안 담당 사회안전군 기병대 등을 퍼레이드 전면에 세운 것도 눈길을 끌었다. 최정예부대를 앞세워 칼 같은 '구스 스텝'(거위걸음) 행진으로 보는 이들을 전율케 했던 전례와 대비됐다.

이런 변화엔 북한 정권의 위기감이 반영돼 있을 법하다. 북한 스스로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으로 명명한 데서 보듯 오랜 경제난으로 이완된 민심을 달래는 데 방점이 찍혔다는 것이다. 즉 "북한은 과거부터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군의 규율을 사회로 투영시키는 노력을 해왔다"(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는 분석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부결속 이벤트로만 북한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자초한 체제 위기는 북핵 제제로 인한 국제적 고립의 결과물이기도 해서다.

그런데도 북측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을 기화로 조금 열려있던 문마저 닫아걸었다. 올해 도쿄올림픽 불참이 단적인 사례다.
그 결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징계를 받아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못나가게 됐다. 이로 인해 '북한식 자폐증'이 더 깊어지고 경제난도 한층 심화될 판이다.
북한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트랙터 열병식 같은 '자력갱생 쇼'가 아니라 핵폐기 협상 복귀에서 답을 찾을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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