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아들 앗아간 해수욕장…그곳엔 안전이란 없었다"
2021.09.15 04:00
수정 : 2021.09.15 08:51기사원문
(삼척=뉴스1) 윤왕근 기자 = "아들을 잃은 후 2년 동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뛰면서 심신이 망가졌어요. 그러나 그날의 진실이 밝혀져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윤상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2019년 7월 13일 오후 5시 40분. 당시 숭실대 전기공학부 2학년이었던 고(故) 유윤상씨(20)의 아버지 유승만씨(54)의 시간은 한 곳에 멈춰 있다. 아들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 영어 동아리 30여명과 MT를 위해 삼척시 근덕면 덕산해수욕장을 찾은 아들 윤상씨와 후배 최모씨(19)는 당시 삼척시 근덕면 덕산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역파도에 휩쓸려 변을 당했다.
아들을 잃은 충격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아버지 유씨의 가슴을 짓눌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고 당시 상황을 파악하던 유씨와 다른 유족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규정상 4명이어야 할 안전관리요원이 2명만 근무했고 그나마 이들마저 근무시간을 어기고 철수한 것.
그렇게 시작한 아버지 유씨의 싸움은 2년간 이어졌다.
아버지 유씨는 1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삼척시의 관리 속 정상 운영되는 해수욕장에 안전시설과 구조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고 안전관리요원 부재로 발생한 명백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 삼척 덕산해수욕장은 당시 '삼척시 해수욕장 지정 및 개장고시'에 의해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관리주체인 삼척시가 관리·운영 일부를 덕산해수욕장협의회(협회회)에게 위탁하고 협의회는 이를 강원대해양레저스포츠센터(센터)에 재위탁해 공동 관리·운영을 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아버지 유씨는 이런식으로 운영된 해당 해수욕장의 허술한 안전 관리 상태가 참사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유씨는 "당시 해수욕장에는 유영가능구역 부표라던지 안전부표, 안전선, 감시탑 등 안전설비가 일체 구비돼 있지 않았다"며 "인명구조선과 구명보트, 수상오토바이, 구명튜브, 로프 등 구조장비 역시 전무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지정·고시한 해수욕장은 개장 전 안전 시설과 구조장비를 모두 갖춰야 한다. 당시 사고 전날인 7월 12일은 삼척 덕산해수욕장 개장식이 열린 날. 이날 개장식에는 삼척시청 공무원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가 가장 허탈했던 것은 당시 사고 시간인 오후 5시 40분쯤은 해수욕장 정상운영시간(오전 6시~오후 8시)인데다 수영 가능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이라 현장에 안전관리요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당시 안전관리요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이들 안전관리요원이 이날 오후 6시 이전 모두 자리를 떴고 운영규정상 4명의 안전관리요원이 근무해야 했지만 당시 2명만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덕산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500m가 넘는 해변. 이같이 넓은 백사장에 단 2명의 안전요원만 근무하고 있었고 이마저도 자리를 이탈해 사고 당시에는 안전요원이 단 한명도 없었던 것.
이마저도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아버지 유씨는 "당시 해수욕장에서 안전관리요원을 했던 대학생에게 관계자로부터 '당시 4명이서 근무를 선 것으로 하자'고 제안한 진술을 확보했다"며 "사과는 커녕 사고를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시도에 분노가 일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관계자들의 적반하장격 태도도 아버지 유씨를 더욱 분노케 했다.
유씨는 "관계자들은 당시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데 굳이 학생들이 물에 들어갔다며 학생들을 탓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씨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기상청으로부터 당시 삼척지역 파고 등 물놀이가 가능한 날씨임을 확인했다.
또 삼척시 등은 당시 '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오후 5시쯤 입수금지 결정을 했고 이후 입수금지 방송을 통해 그 사실을 알렸고 안전관리요원이 입수금지 계도를 했다'고 했지만 유씨는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당시 경찰 수사의 문제점도 제기했다.
유씨는 "덕산해수욕장의 관리주체는 삼척시"라며 "그러나 경찰단계에서 삼척시 공무원에 대한 책임 부분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사고 관계자는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유족의 마음에 소금까지 쳤다.
유씨는 "당시 해수욕장 안전관리자가 윤상이와 함께 사고를 당한 최모군의 어머니에게 '아드님이 제 꿈이 나타나 고맙다고 5만원을 주고 갔다'는 황당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본인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유족을 마음을 어쭙잖게 풀어보려한 것이 되레 우롱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윤상씨의 죽음과 얽힌 사건은 15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선고를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 7월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전관리자 A씨와 당시 해양레저스포츠센터장 B씨 등에 각 금고 2년을, 또 다른 관계자 C씨에게는 금고 1년 6월을 구형한 상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가족과 모임을 준비했을 시간. 유승만씨는 이 같은 형사소송 외에도 삼척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등 긴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유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추석 연휴 윤상이가 있는 봉안당 방문에 제한이 있다고 해서 지난주 미리 다녀왔다"며 "윤상이에게 힘들지만 끝까지 가서 사실을 밝혀내고 향후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할 테니 잘 지켜봐달라고 말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윤상이 사건은 업무 매뉴얼 중에서 단 한 가지만 제대로 지켰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매년 반복되는 사고임에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발생한 안전 불감증에 의한 명백한 인재다.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척시 관계자는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소송과 시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 등 법적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