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대교 갈등, 지하철 9호선 모델로 풀어보자

      2021.09.17 14:24   수정 : 2021.09.17 15:00기사원문
박원순 시장 8년 전 재구조화
주주 바꾸고 약정수익률 낮춰

이재명은 공익처분 멈추고
국민연금은 협상에 응하길
어떤 경우에도 배임이 관건


[파이낸셜뉴스] 일산대교 논란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왜 그럴까 따져보니 원인이 두 가지로 좁혀진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공익처분 결정을 내린 게 거북하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긴커녕 콜라 마시고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다. 또 국민연금이 차로 한강다리를 건너는 국민한테 돈을 걷어 수익을 올리는 것도 보기에 민망하다.
일산대교는 한강다리 가운데 유일한 유료 도로다. 해법은 없을까? 있다. 8년 전 서울 지하철 9호선을 재구조화한 사례가 모델이다.

◇일산대교는 진보정부 작품

고양~김포를 잇는 일산대교를 민간자본으로 짓자는 아이디어는 김대중정부 시절에 처음 나왔다. 1998년 민자유치 대상 사업으로 등록됐다. 외환위기 한복판이라 민자 사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왕복 4차로 설계를 6차로로 바꾸면서 사업이 더 더뎌졌다. 그러다 2002년 당시 임창열 지사(새정치국민회의ㆍ현 더불어민주당)가 대림산업, 대우건설, 금호산업 등 건설사 컨소시엄과 협약을 맺었고 이듬해 드디어 착공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5년만인 2008년 일산대교가 개통됐다.

1년 뒤인 2009년 11월 국민연금이 일산대교㈜ 지분을 전량 인수했다. 당시 최대주주이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계열사 금호산업ㆍ대우건설이 가진 지분을 내놨다. 이를 국민연금이 샀다. 기관투자가가 인프라에 투자하는 예는 드물지 않다. 예컨대 서울 우면산터널을 관리하는 우면산인프라웨이는 대체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파인스트리트와 호주계 투자회사인 맥쿼리가 대주주다.

국민연금 기금은 6월말 기준 908조원 규모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주식 46.1%, 채권 43.5%, 대체투자 10.4%로 나뉜다. 대체투자에서 인프라만 따로 떼면 26조2000억원을 굴리는 중이다. 인프라 투자 건수는 173건(작년말)으로 집계됐다. 일산대교는 그중 하나다.


◇이재명 공익처분 강공

일산대교는 BTO 방식으로 지었다. BTO는 Build-Transfer-Operate의 약자다. 민간이 짓되 소유권은 정부(지자체)에 넘기고 대신 시설 운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일산대교는 운영기간이 2008~2038년 30년으로 정해졌다. 약속한 수익률(약 8%)을 밑돌면 정부가 최소운영수입보장계약(MRG)에 따라 모자라는 돈을 채워준다.

특혜가 아니다. 이렇게 안 하면 민자 유치가 어렵다. 사실 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은 재정으로 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통행료가 없거나 싸다. 그러나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민간에 손을 벌린다. 지원을 요청할 땐 뭔가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일산대교는 개통 후 죽 적자를 내다 2017년 흑자로 돌아섰다. 일산, 김포, 파주 등 경기 서북부 인구가 크게 늘면서 통행량이 급증한 덕이다. 그러자 고가 통행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고양시에 따르면 "일산대교는 주요 민자 도로보다 6배 높은 1km 당 660원의 통행료를 부과한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3일 "경기도민의 교통기본권 회복과 통행료 무료화를 위해 일산대교 공익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익을 위해 일산대교 운영권을 국민연금에서 회수한다는 뜻이다. 통행료 폐지 시기는 10월로 잡았다. 이 지사는 우월적 지위, 폭리, 불공정, 악덕 사채업자 등 거친 단어를 써가며 국민연금을 때리는 중이다.

사회기반시설민간투자법은 "사회기반시설의 효율적 운영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주무관청에 공익처분권을 준다(47조 ①항). 단 주무관청은 사업시행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47조 ②항)는 단서를 달았다. 교통기본권 확보를 '공익'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다. '지사 찬스'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는 공익처분을 밀어붙일 태세다.


◇배임 트라우마가 최대 장벽

하지만 아주 큰 걸림돌이 있다. 국민연금을 떠도는 배임 트라우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 속에 국민연금은 된통 당했다. 2016년 참여연대 등 진보 시민단체들은 배임 혐의로 국민연금을 고발했다. 당시 복지부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은 재판에 불려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모든 게 국민 노후자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기금을 관리·운용"할 것을 규정한다(102조 ②항). 만약 일산대교 공익처분을 선뜻 수용하거나,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국민연금은 '수익 최대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국민연금 임직원들은 이 지사보다 배임이 더 무섭다.

◇민자사업을 손질한 사례

이재명 캠프 총괄 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은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는 마땅하다'라는 제목의 언론 기고문(경기신문 2021년 9월13일)에서 민자사업을 재구조화한 사례로 인천공항철도와 서울시 지하철 9호선을 든다. 인천공항철도보다는 지하철 9호선 사례가 흥미롭다.

2007년 개통한 인천공항철도는 적자투성이였다.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9년 국토교통부는 코레일로 하여금 공항철도㈜ 지분 88.8%를 1조2064억원에 인수하도록 했다. 이 바람에 코레일 부채비율이 부쩍 높아졌다. 코레일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15년 소유지분을 국민·기업은행 컨소시엄에 재매각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인천공항철도는 여전히 예산 먹는 하마라는 비판에 시달린다.



2013년 10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 작업을 마무리했다. 주주 변경, 최소운영수입보장(MRG) 폐지, 약정 수익률 인하 등이 핵심이다. 서울시는 운임 인상을 두고 사업시행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와 마찰을 빚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아예 주주 교체를 통해 호주계 맥쿼리를 내보내고 대신 교보생명·한화생명·신한은행 등을 새 주주로 받아들였다. MRG는 폐지하고, 실부족분만 지원하는 비용보전방식을 도입해 시 재정 부담을 낮췄다. 약정 수익률(경상)은 13%대에서 4.86%로 낮췄다.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는 일산대교가 모델로 삼을 만하다.

◇이재명·국민연금 합작품 기대

이재명 지사에 당부한다. 공익처분은 보류가 바람직하다. 강행할 경우 민자사업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다. 정부가 방방곡곡 도로, 다리를 다 지을 순 없다. 민간에 손을 벌려야 한다면 살살 달래서 가는 게 상책이다. 배임을 우려한 국민연금의 강한 저항도 걸림돌이다. 애당초 일산대교가 진보정부의 작품이란 점도 기억하자.

국민연금에 당부한다. 인프라 투자는 좋지만, 한강다리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걷는 건 국가대표 연기금에 어울리지 않는다.
1%를 밑도는 사상 최저금리 시대에 대출금 이자율 20%는 설득력이 약하다. 배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통행료 인하 등 재구조화 협상에서 좀 덜 까칠하게 굴어도 좋을 것이다.
이 지사와 국민연금의 합작품을 기대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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