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재영이 말하는 '매축지' 이야기

      2021.10.08 17:41   수정 : 2021.10.08 17:41기사원문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풋사랑이나 첫 키스, 혹은 처음 배운 운전을 할 때처럼 무릇 세상사 모든 처음 하는 일들이란 어색하거나 서툴기 마련이지만 소설 ‘매축지’를 쓰고 출간하면서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다시 하게 됐다.

삼십여 년 해외로만 떠돌며 밥벌이를 하다가 은퇴하여 평생 해보지 않은 장편소설을 쓰는 것도 그랬지만, 출간 후 주변의 여러분들로부터 듣는 독후감이나 격려에는 쑥스러움과 설렘이 버무려진 어정쩡한 답변으로 고마움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거안연구소’ 차려놓고 매일 집 ‘거’실과 ‘안’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오늘은 뭐 먹나 내일은 뭐하고 노나 그런 ‘연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소설을 썼느냐”며 눈을 크게 뜨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눈밝은 독자는 내가 지나가듯이 끼워 놓은 소설 속의 문장을 예리하게 집어내어 그 맥락을 풀어내면서 전체 글에 대한 평론 수준의 독후감을 보내줬고 어느 분은 과분하게도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사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돌림으로써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많은 독자들이 즐겁게 읽었다는 평에 덧붙여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는 당부 아닌 당부들을 해서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의례적인 인사로 여겨야 할지, 공연히 일을 벌려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고민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즐겁게 추억해준 여러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절묘한 말을 남겼듯이 모름지기 세상일 또한 꼭 슬프거나 기쁜 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궁핍하고 힘든 세월 속에도 웃음과 희망이 늘 같이했고, 그런 세월을 거쳐오면서 세상은 점점 더 살만한 곳으로 변해왔기에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믿는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거안연구’를 계속 하든 글을 더 쓰든 그러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오늘 뭘 하고 놀든 내일 뭘 먹든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소설 ‘매축지’는 열여덟 개의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으면서 그 순서를 ‘하나, 2, 셋, 4, 다섯, 6, 일곱, 8…’로 날줄과 씨줄을 얽듯이 숫자를 배열했는데, 아직 그 연유에 대해서 물어온 사람은 출판사 편집장 한 분 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 중에 그 이유를 제일 먼저 맞춘 분께는, 별도의 상품을 드릴 형편은 못되고, 커다란 감사와 함께 기회가 허락되면 허름한 주점에서 대포 한 잔은 올리리라 약속 드린다.

이재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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