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액테러'가 재물손괴?… "성범죄로 처벌 규정 바꿔야"
2021.09.27 18:02
수정 : 2021.09.27 18:02기사원문
여성의 가방에 자신의 피임도구나 체액을 넣는 '테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성범죄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성적 의도를 지닌 행위라는 점에서 성범죄의 성향을 띄지만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아 강제추행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관련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체액테러, 성범죄 적용 '애매'
27일 경찰에 따르면 7개월 동안 지하철역에서 여성들의 가방이나 옷 주머니 등에 자신의 체액이 담긴 피임기구를 몰래 넣은 남성이 재물손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로 지난 8월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현행법상 해당 남성이 성범죄로 처벌 받을 확률은 낮다.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액 테러는 사람이 아닌 소지품을 대상으로 이뤄져 현행법상 가해자를 재물손괴로 처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성범죄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접수돼 수사 중이거나 검찰에 넘겨진 '체액 테러' 사건은 총 4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5건은 강제추행이 아닌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됐다. 발생 사건 3건 중 1건꼴로, 피해자의 신체가 아닌 신발, 옷에 정액을 묻힌 경우다.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성적 의도를 가지고 직접 신체에 피해를 주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면서 "체액을 상대방에게 뿌리는 경우 성범죄 적용이 가능하지만 '피임도구 테러'처럼 가방을 망가뜨리는 경우 성범죄 혐의 적용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체액 테러, 간접 성범죄로 봐야"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물건에 대한 체액 테러도 성범죄 테두리 안에서 처벌해야 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 의원은 지난 7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체액이 간접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성범죄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바뀌는 만큼 성범죄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 등을 고려하면 성범죄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