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들의 '푸른 리본 배지'
2021.10.26 18:00
수정 : 2021.10.26 20:50기사원문
2002년 북일 정상회담(고이즈미 준이치로-김정일)의 성과로 납치 피해자 중 5명이 귀국했을 당시, 수십년 만에 일본 땅을 밟은 이들의 가슴에도 큼직한 푸른 리본이 달려 있었다. 여성, 아동, 환경단체들의 캠페인 주간에 맞춰 보라색, 노란색 등의 리본 배지도 착용하지만 이 푸른 배지만은 상시 착용이다. 배지에 등급이 있다면, 푸른 배지가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것이다. 일본 정치에서 납치 문제나 그 피해자 단체가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예다.
인권문제에 있어 '좌냐, 우냐'의 구분을 짓는 게 적절치는 않으나 실제 현실정치에서 이 푸른 리본은 보수의 선명성을 확인하는 증표로 사용된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충실히 착용하는 경향이 있다. 납치 문제를 자신의 핵심 어젠다로 삼았던 아베 전 총리는 물론이고 '아베 사단'의 다카이치 사나에가 그 대표다. 유력 총리 주자였던 고노 다로는 '달다 말다'를 반복, "보수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만 다는 것이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증표 논란에도, 중요한 건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던 아베·스가 정권 8년9개월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은커녕, 납치 문제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스가 정권 초기, 한 일본 기자는 "과연 총리가 납치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결단(포기)을 내릴 수 있겠는가. 아마 결코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기시다 총리는 총리직 도전을 앞두고 지난해 출간한 '기시다 비전'(고단샤)에서 납치 문제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저서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에서는 4번 나오는데, 북한 핵 미사일 문제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함께 거론되는 정도다. 납치 문제보다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북핵 문제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면, 이로 인해 대화의 높은 문턱인 납치 문제를 넘어 '북일 깜짝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아베 전 총리처럼 푸른 배지나 달면서 가족들이나 단체, 여론을 만족시켜주는 말이나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냉소적 시선이 많기는 하다. 납치 문제가 '상징 정치'에 그대로 머물 것인지, '대화의 고리'를 만들어낼 것인지 기시다 외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