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표 대신 젓가락 들고… 식탁 위 ‘전국 식도락여행’
2021.10.28 17:01
수정 : 2021.10.28 17:01기사원문
가정간편식(HMR)의 전성시대다. 언제 어디서나 전국 맛집의 음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다. 그 중에는 한참 전에 먹어 본 것도 있고,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이름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접하는 나의 눈, 코, 입은 마냥 행복할 뿐이다.
식도락 여행에는 죽이 잘 맞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요알못에 초딩 입맛이지만 아내가 최고 적임자다. 못 먹는 것도, 안 먹는 것도 많은 사람이라 같이 있으면 내가 먹을 게 많기 때문이다.
■서울식 소불고기 전골에 마포식 돼지양념구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 (뇌피셜이지만)'집 떠나면 늘 배가 고픈 법'이다. 이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고기가 최고다. 첫 번째 주자로 냉장고에서 호밍스 '서울식 소불고기 전골'을 꺼냈다. 부드러운 고기와 밥 한 그릇, 남은 국물에 쓱쓱 비벼서 또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으니 이만한 반찬이 없다. 여기에 쫄깃한 당면이 덤으로 따라붙는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대표적인 음식이지만 아내는 크게 반기지 않는다. '물에 빠진 고기'라는 이유에서다.
포장을 열어보니 고기와 육수, 당면에 팽이버섯, 대파, 청경채 등 야채가 다양하게 들었다. 나의 먹성을 아는 아내가 "2인분 치고는 양이 아담하다"며 싱크대 서랍에서 당면을 꺼낸다. "야채가 전골의 맛을 더 깊이 내준다"고 하자 두말 없이 당근과 새송이버섯을 추가로 준비한다.
전골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냄비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는 순간 배고픔은 두 배가 된다. 10분이 참 길게 느껴진다. 맛은 설명이 필요 없다. 다섯 가지 채소를 끓여서 만들었다는 육수(채수)의 감칠맛이 한마디로 끝내준다.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당면을 공략할 차례다. 개인적으로 당면은 살짝 불은 게 더 맛나다. 새송이버섯, 당근과 함께 먹으니 말 그대로 '씹는 맛'이 있다.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는 줄도 모르고 연신 호로록~ 소리만 낼 뿐이다. 국물이 남았다. 아내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밥을 더 달라'는 신호다. 하지만 아내는 냉정하다. 애먼 냄비 바닥만 달그락달그락 긁어댄다.
아내를 위해 꺼낸 호밍스 '마포식 돼지양념구이'는 숨은 진주의 발견이다. 아내 말고, 내 취향을 100% 저격했다. 전자레인지에 3분간 데웠을 뿐인데 맛있는 불향이 난다. 직화로 구워낸 덕분일 게다. 대파가 숭숭 올라가 있으니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양념 소스는 '단짠의 정석'으로 꼽을 만하다. 밥을 비비면 두 그릇은 족히 먹을 것 같다. '하얀 쌀밥에 햄' 못지 않은 '밥도둑'으로 인정한다.
두어 점 얻어먹었을 뿐인데 초록색 병에 든 음료가 그리워진다. 한 잔에 고기 한 점이면 술~술~ 넘어갈 듯하다. 나의 '먹킷리스트' 상단에 저장한다. 조만간 꼭 제대로 먹고 말 거다.
■춘천식 치즈닭갈비와 청송식 닭불고기
'아차' 하는 순간 춘천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 오늘 하루 '솥뚜껑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춘천 가서 닭갈비나 뜯고 가자"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전자레인지에서 3분을 머무른 호밍스 '춘천식 치즈닭갈비'가 식탁을 점령한다. 매콤한 양념에 닭다리살과 모차렐라치즈가 듬뿍 들어갔다. 깻잎도 보인다. 사실 이런 초간편식 제품은 맛을 기대하기 힘든데 치즈닭갈비는 불향이 살짝 나는 게 고퀄(높은 품질)로 인정할 만하다. 맛 평가에 인색한 아내가 "담백한 닭고기, 매콤달콤한 비법 소스, 깻잎의 향긋함과 치즈의 고소함까지. 갖출 거 다 갖춘 일품요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맛팁을 소개하자면 치즈와 닭갈비가 섞이도록 잘 저어야 '후루룩~ 찹찹'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갑자기 어느 블로그에서 계란볶음밥에 '춘천식 치즈닭갈비'를 올려 덮밥으로 만들었던 게 생각이 난다. 아놔, 생각은 머리로 하는데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닭갈비에는 항상 초록색 병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아내는 보리음료가 든 갈색 병을 골랐다. 건배 두어 번에 닭갈비는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역시 대식가 부부에게 치즈닭갈비 하나로는 태부족이다. 오늘은 쭉~ 같은 종목으로 달리기로 한다. 호밍스 '청송식 닭불고기'가 출연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원래는 경북 청송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건가. 치즈닭갈비와 다른 점은 전자레인지가 아닌, 프라이팬이라는 거다. 기름기가 적당히 나오니 따로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태울 걱정이 없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썩 괜찮은 요리가 완성됐다.
닭다리살을 5㎜ 두께로 저며 양념이 쏙쏙 배었다. 기대 이상으로 부드럽고 촉촉하다. 집에서 바로 양념해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다시 데워 먹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순창고추장의 매콤한 맛에 '새우O' 만큼이나 자꾸자꾸 손이 간다.
■부산식 곱창전골과 언양식 바싹불고기
부산식 곱창전골은 태어나 20년간 '부산 촌놈'으로 살았던 내게도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심지어 부산에 살면서는 곱창을 먹은 기억조차 없다. 곱창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 주방의 키를 잡았다. 곱창전골은 집에서 해먹기는 힘든 음식인데 이렇게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미리 준비할 것도 없이 10분이면 뚝딱 차려낼 수 있다.
'음식은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먹는다'고 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호밍스 '부산식 곱창전골'이 그랬다. 포장을 열어 냄비에 쏟아냈을 때는 비주얼에 실망하지만 맛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자 '코를 잡고 있던' 아내가 냉장고에서 초록색 병을 꺼낸다. 오늘도 열심히 일한 남편에게 주는 '뽀~나스'란다.
곱창도 넉넉히 들었고(포장에는 2~3인분이라 적혀 있다), 사골육수와 채수로 만든 국물이 얼큰하니 연신 '캬~'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내의 이마에는 짜증 섞인 주름이 깊게 파인다. 저녁밥을 대신해 출출함을 달래주는 우동면이 신의 한 수다. 면에 국물이 진하게 스며 별미 중의 별미다. 수타식이라 그런지 어지간한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쫄깃하고 맛나다.
부산에서는 최고의 밥 반찬 가운데 하나인 언양 불고기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호밍스 '언양식 바싹불고기'의 포장 겉면에도 '밥만 준비하세요. 여러 반찬 필요 없는 All-in-One 메인요리'라고 쓰여 있다.
안에는 바싹 불고기 한 판이 그대로 들었다. 새송이버섯 두 조각이 앙증맞게 올려져 있는 게 포인트다. 다진 고기가 아니라 생고기를 1㎜ 두께로 얇게 저며 부드러운 식감을 그대로 살렸단다. 2인분이라고 돼 있으나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했으니)1인분으로 이해한다.
프라이팬에서 앞뒤로 3분씩 구우면 끝이다. 새송이버섯은 떼어 내고 구워야 한다. 안 그러면 그 부분의 고기가 덜 익는다. '100% 자연숙성 발효한 양조간장을 두 번 달여 감칠맛을 더하고, 연육작용에 좋은 파인애플을 넣어 부드럽다'는 설명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그냥 '맛있다'는 얘기다.
고기는 상추쌈이 진리다. 상추에 바싹 불고기와 함께 마늘(또는 고추)을 쌈장에 푹~ 찍어서 올리면 비주얼도, 맛도 엄지척이다. 밥 한 그릇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마법이 펼쳐진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