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사망사고 내고 목격자 행세한 70대…어떻게 들켰나

      2021.11.07 07:30   수정 : 2021.11.07 15:21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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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지난해 11월18일 오후 6시35분쯤 광주광역시 119종합상황실에는 한통의 긴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서구의 모 아파트 단지에 "한 여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남성의 신고였다.

해당 남성은 "넘어졌어요?"라는 상황실 대원의 물음에 "모르겠다"고 대답한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119구급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미 해당 여성은 의식이 없는 위독한 상태였다. 여성은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현장에는 신고자 남성을 포함해 수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이 여성이 도로에 왜 쓰러져 있는지를 묻는 119대원에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4시간 30분뒤인 오후 11시부터는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사태 파악이 늦어지면서 피해 여성 가족의 신고가 뒤늦게 접수된 까닭이다.

경찰은 같은날 오후 11시30분쯤 가장 먼저 최초 신고자로 밝혀진 A씨(74)를 찾아가 피해 여성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하지만 A씨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좌회전을 하려는데 화단 앞에 여성이 쓰러져 있어 119신고를 하게 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 여성은 병원 치료 중 골반골 골절 및 출혈성 쇼크로 숨을 거두게 됐다.

다음날인 19일 오전 A씨는 오전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에 출석했다.

밤사이 아파트 주민 조사와 블랙박스 등에서 모순점을 찾은 경찰은 A씨를 다시 집중 추궁했다.

A씨는 전날과 같은 진술만 반복하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다 경찰은 같은날 오후 지인인 B씨(아파트 주민)를 불러 대질조사를 진행했고, A씨는 그제야 "좌회전 당시 차가 무언가를 타고 넘어가는 느낌은 있었다"고 범행을 시인했다.

A씨는 사고 직후 태연히 주차까지 마치고 걸어가던 중,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 119 신고를 해달라'는 B씨의 요청을 받고 119에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충돌 직후 잠시 차를 정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주치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자동차 좌측 뒷바퀴에 커다란 물체를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이는 점과 사고 직후 잠시 정차 한 점, 목격자 행세를 하며 진술이 번복한 점 등을 미뤄 A씨가 사고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다친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즉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이 사건 교통사고의 존재 및 그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역과하는 교통사고를 내고도 즉시 구호조치 등을 취하지 않고 목격자인 양 행세한 점은 그 비난가능성이 크고, 유족들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해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이 당심에 이르기까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범행을 부인했고, 자신이 마치 목격자에 불과한 것처럼 행세한 것은 죄질이 매우 나빠 원심의 형이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한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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