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못 버텨, 위드코로나로 더 최악"…간호사들이 떠난다
2021.11.08 06:17
수정 : 2021.11.08 09:07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주변 간호사 친구들은 '하나같이 더 못 버티겠다' 이런 말을 해요. 일상회복이라고 하는데 저희한테는 먼 나라 이야기예요."
일명 '위드(with)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었지만 서울 보라매병원 김경오 간호사는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남들은 (위드코로나를) 다 누리고 있는데 의료진들은 하고 싶어도 못해서 괜히 이 직업 선택했나 회의감이 든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의 단계적 일상회복, 일명 '위드코로나'가 시행된 가운데 그간 'K-방역' 최전선에 있었던 보건의료인력은 소외되고 있는 모양새다.
전국이 일상 회복 단계에 들어섰지만 현장 간호사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씨는 "의료진으로서 일상생활 포기하면서 조심하고 있는데 핼러윈에 이태원이 미어터진 걸 보면 답답하다"라며 "동료들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다들 자포자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모씨(26)는 "확진자가 나오면 병동이 폐쇄되고 환자들도 위험해질 수 있어 스스로 조심한다"라며 "병원에서는 여전히 (거리두기) 단계를 정해주면서 뭐가 허용되는지 일일이 정해주기 때문에 위드코로나가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업무량 과중으로 간호사들이 떠나면서 남은 의료진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코로나 때문에 더 많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 병동으로) 파견 나가면서 일반병동에 남아있는 간호사들에게 업무가 몰려 퇴직하고 나면 남는 사람들에게 일이 몰려 또 퇴직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3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 중 80.1%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업무가 아닌 일에 시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씨는 "코로나 이후 보호자 관리가 엄격해졌는데 그 책임이 모두 간호사들에게 넘어와 환자들 볼 시간도 부족하다"며 "병원 지침에 따라 확인이 안 된 보호자는 내보내야 하는데 협조하지 않아 얼굴 붉힐 일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이에 의료진들은 위드코로나 시행 이전 세부적인 대책이 충분한 논의 뒤에 마련돼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부가 하루 확진자를 최대 5000명까지 염두에 두고 의료 대응 체계를 갖추겠다는 방침에 대해 일선 간호사들은 해당 계획이 부실하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위드코로나 이후 확진자 폭증은 어느정도 예측이 됐던 일인데 관련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축소되고 인력 기준이 마련돼야 위드코로나에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지현 의료연대본부 조직국장은 "확진자 폭증에 대비해 인력 충원과 병상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데 현재 정부의 계획은 불투명하다"며 "인력 충원을 담당하는 부처에서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핑계를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 국장은 "방역 기준이 낮아진 지금이야말로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주장했던 공공병원 확대와 민간병상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 9곳 노동조합은 공공병원 확대와 공공병상 확대, 의료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11일 총파업을 예고한 바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3개월 전부터 위드코로나를 준비한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며 "이미 중환자 병상이 70% 찬 상태에서 일일 확진자가 5000명에서 7000명까지 늘어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백신 부스터샷을 빨리 늘려서 중증사망자를 줄이고 재택치료를 강화해 의료시스템 과부화를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