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먹충' 놀림받던 게임 '현거래'…NFT 타고 21세기엔 '황금알' 변신?
2021.11.12 09:28
수정 : 2021.11.12 10:01기사원문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그동안 '게임을 플레이해서 얻은 재화와 아이템으로 돈을 버는 행위'는 소위 '게임폐인'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여겨지며 '음지'에 머물러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가 일부 게임 유저들의 일탈 행위에서 게임사의 어엿한 수익모델로 변하고 있는 것. 실제로 국내 중견 게임사인 위메이드가 해외에서 P2E 게임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자 카카오게임즈, 컴투스·게임빌에 이어 '게임 아이템의 원조' 엔씨소프트까지 P2E 모델 도입을 시사하며 '돈버는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P2E의 원조는 美 울티마 온라인…게임 속 집 이베이에서 거래
'게임을 통해 돈을 번다'는 정의로 접근할 경우, 소위 '현거래'(현금거래)라 불리는 행위가 P2E의 원조다. 영어로도 'RMT'(Real Money Trading)이라 부른다.
공식적인 첫 '현거래'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시작한 지난 1997년 선보인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인 '울티마 온라인'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울티마 온라인은 집을 짓고 꾸밀 수 있는 '하우징' 기능을 지원했다. 그러나 부지는 한정돼 있고, 집을 원하는 사람은 많아 일반적인 게임 내 재화로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결국 일부 플레이어들이 온라인 거래 플랫폼인 이베이를 통해 집을 판매했고, 이를 계기로 게임 내 재화나 희귀한 아이템, 계정까지 이베이를 통해 거래됐다. 울티마 온라인 내 대규모 하우징인 '성'(Castle)의 판매 가격은 수천달러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韓 바람의나라·리니지 등 시작으로 활성화…거래규모 연간 1.4조원대
국내에서도 같은해 출시된 넥슨의 '바람의나라'에 이어 1998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2000년 블리자드의 '디아블로2', '월드오브워크래프트'(2005년) 등 인기를 끈 MMORPG를 중심으로 '현거래'가 이뤄졌다.
이어 지난 2002년 7월 온라인게임 아이템거래 중개 플랫폼인 '아이템매니아'가 등장한 뒤 게임내 아이템과 재화를 판매해 현금을 버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연령대가 높고, 아이템 강화 성공 확률이 극도로 낮은 '리니지' 시리즈의 경우, 게임내 최고가 제작 아이템의 가격이 수억원을 호가하는 수준이다. 엔씨소프트가 창단한 야구단 NC다이노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실물을 제작해 들어올려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집행검'이라는 아이템의 경우 '집판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개별 아이템뿐 아니라 아이템 거래시장 규모 자체도 20년 사이 크게 늘었다. 국내 1위 플랫폼인 아이템매니아에서는 월 평균 24만건 이상의 거래가 이뤄지고, 국내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 거래액 규모는 연간 1조4000억~1조5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이템 '현거래' 그동안 보호받지 못하고 '쌀먹' 조롱까지
그러나 이같은 시장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이템 거래는 합법과 불법 사이의 '그레이존'인 탓에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넥슨,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사들의 경우 약관을 통해 아이템과 개임내 재화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현금 거래를 시도하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이를 보상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이 이용자에게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민법에서 게임 아이템에 대한 권리도 독립된 권리가 아닌 게임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재산권에 포함돼 있다고 보고 있어 소유권 자체는 게임사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 현금 거래의 경우 상대방을 기망해 실질적인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형법상 사기죄는 성립한다.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도 소위 '매크로' 등을 통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게임머니를 생산해 거래하는 '현거래'가 게임 내 경제를 왜곡하는 일종의 '치팅'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템·게임머니를 팔아) 쌀을 사먹는 사람'을 지칭해 조롱하는 '쌀먹', '쌀먹충'이라는 비하 용어까지 등장해 널리 사용될 정도다.
◇현거래, NFT 바탕으로 새로운 전기 맞이할까 P2E 시대 '활짝'
20년전 '세상에 없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1세대 온라인 게임 시절에 외부 거래 사이트를 통해 아이템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면, 21세기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으로 아이템 거래가 게임사가 직접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급부상하게 된 셈이다.
'현거래'가 외부 거래 플랫폼을 통한 유저간 거래 시대를 넘어 게임사 자체의 암호화폐 플랫폼과 결합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최근 주목받고 있는 P2E 게임은 NFT 기술을 통해 게임 자체에서 게임내 재화를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일례로 위메이드는 자사가 보유한 암호화폐 '위믹스'를 '미르4' 게임 내 아이템인 흑철을 모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위메이드는 미르4 외에도 다양한 게임을 위믹스 플랫폼에 추가해 P2E 체제를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P2E 게임 도입이 게임사 입장에서는 '기회'가 된다. 앞서 언급한 메이드는 인앱결제, 코인 교환 등에 수수료를 부과하며 매출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일부 '게임 폐인'에서 '직업 게임인'이 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열풍에 돈을 벌기 위한 채굴 열풍이 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게임이 '놀이'가 아니라 '생계 수단'이 되면서 본말이 전도돼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도 있다. 실제로 P2E 게임이 성행하는 곳은 동남아, 남미 등 경제가 취약한 나라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뺏긴 젊은이들이 '돈벌이' 게임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P2E 게임이 불법이다. 국내 게임법 제32조 제1항 7호는 '누구든지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내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을 환전 또는 환전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금 환급을 바탕으로 '도박'이 될 것을 우려해 정해진 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