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너에게… 귀 기울여보기

      2021.11.19 04:00   수정 : 2021.11.19 08:17기사원문
'정상'이 지닌 권력은 질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획된 세계에서, 스스로 정상에 속한다고 믿는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갖지 않으며, 낯선 것을 이상하다고 여긴다. 인식의 한계 속에서 타인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일은 반복되며 차별로 이어진다. 한편, 경계 바깥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세계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면, 여기 두 권의 좋은 소설책이 있다. 바로 12년 만에 재출간된 엘리자베스 문의 SF소설 '어둠의 속도'(푸른숲 펴냄)와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김초엽의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 펴냄)다. 두 작가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한다. '어둠의 속도' 추천사에서 김초엽 작가는 "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구원할까"라는 질문을 발견했다고 썼다. 이 질문은 김초엽의 소설에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방금 떠나온 세계' 역시 기술이 발전한 미래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를 향한 이해를 시도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의 세계를 당사자의 위치에서 들여다보는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도 자폐 특성은 장애와 질병으로 규정된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술의 발전이다. 태어나기 전에 자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세상에는 자폐증상을 가진 이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치료를 받지 못한 마지막 자폐인 세대로, 다른 자폐인들과 함께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을 발휘해 회사에서 큰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잘 짜여진 듯 보이는 그들의 일상은 상사 크렌쇼가 자폐증상을 없애는 '정상화 수술'을 강요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회사는 그들에게 '정상인'이 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술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소설일까.

쉽게 낙관으로 달려가기 전에, 이 소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자폐 당사자인 루 애런데일의 시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루가 어떻게 빛과 패턴을 감각하고,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과 교류하는지 고유한 일인칭으로서의 세계를 전달한다. 문장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루의 특성들이 교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폐 특성을 낙인찍는 세계에서 루는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을 정상적인 기준에 비추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독자들은 자폐 증상을 없애는 것이 해답인지를 되묻게 된다. 루의 입장에서 '자폐가 사라져도 나를 나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절실히 와닿기 때문이다.

경계 너머를 질문하는 일은 김초엽의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우리가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고 하며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 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된 7편의 소설들은 이해 너머의 존재들을 불러낸다. 결함을 가진 복제 인간, 새로운 인식 체계를 가진 여자아이, 인지 공간의 한계를 상상하는 존재 등 그들은 다르게 감각하고 사고하기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해의 불가능성을 앞에 두고도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
마침내 다른 존재들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소설은 벅찬 감동을 선사하며 우리가 사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질문을 통과하면, 세계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보인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질문과 만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어떤 체험보다도 충만한 일이 아닐까. 쉽게 안다고 말하는 것을 멈추고, 서서히 스며들 듯이 타인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가 보자. 두 권의 SF소설책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김윤주 예스24 채널예스 에디터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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