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만 숨은게 아니에요" 이 한마디에 엄마는 '희망'을 얻는다

      2021.11.21 18:05   수정 : 2021.11.25 11:07기사원문
지난 6월 26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사무실. 모임 시작 시간인 오후 2시를 전후해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속속 자리를 채웠다. 서울시 청년청이 진행하는 '부모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 K2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둔 10여명의 어머니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과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은둔 경험이 있는 상담사에게 질문도 던졌다.

지금 당장 아이를 방밖으로 나오게 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부모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모아카데미 모임은 6월 26일과, 7월 3일 두 번 진행했다

■좌절, 실패 연습 가르치지 않는 학교

평범한 10대, 20대였던 청소년·청년들이 처음 은둔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의 '실패 경험'이다.
실제로 그것이 '실패'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실패'라 여기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게 된다.

오쿠사 미노루 K2인터내셔널코리아 슈퍼바이저는 "한국은 AS 없는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있어봤자 24세까지이고 그 뒤에 문제해결은 오로지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의 26세 자녀는 현재 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구실로 4년째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와 대화가 단절된 일반적인 경우와는 정반대다. "아이가 고2 때 서울대를 포기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것 같다. 가족 중에 교육자도 많은데 애 말로는 내가 너무 예민했다고 하더라. 병원에서 상담하자고 했는데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방에서 나와 하루 종일 쫑알쫑알 얘기한다. 현재는 주식과 코인에 빠져 있는데 몇 백만원을 줬더니 아예 5000만원까지는 증여세가 없으니 5000만원을 달라고 한다. 친구도 사귀라고 하면 '친구가 나한테 돈을 주는 건 아니다' 항상 그렇게 말한다. 공무원 시험도 준비하라고 하면 7월부터 한다고 하는데 매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룬다.

B씨의 19세 자녀는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약 4개월 정도 방 밖을 나오지 않고 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교대 가는 것이 꿈이었다.

"아이가 상담센터를 가서 '최상의 성적을 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자기가 인간 말종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학교에 가긴 하지만 자살이 염려돼서 학교 선생님이 확인 문자를 보내준다. 아이가 고지식한 면이 많아서 자기가 학교밖 청소년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상담도 받고, 정신과도 다녀 봤는데 자기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지금은 둘다 다니지 않고 있다."

■지나친 기대, 과도한 무관심, 그리고 비교

은둔형 외톨이들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 찍는 일은 때때로 부모들의 과도한 기대와 관심으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부모들의 '잘못'도 아니고'책임'도 아니다. 다만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자책으로, 때로는 미움으로 번진다. '이번 생은 부모가 처음이라'는 말처럼 부모들도 아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C씨는 "어릴 적부터 '굳세어라 금순아' 정신으로 살았고 난관을 부딪히면 헤치고 나가지 못하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나 남편이 넘어지고 '아파'라고 하면 '아프면 닦아'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과도한 기대와 달리 때로 아버지의 지나친 무관심은 가족을 더 힘들게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주변과의 비교도 문제다. 한 어머니는 "아빠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이 공부는 신경 안 쓰는 편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가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어서 대화가 많지 않고 관계도 좋지 않은 편이다." 또 다른 어머니도 "부모 상담에 같이 가자고 해도 절대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설득을 하려해도 화부터 낸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주변과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자존감이 내려간 은둔형 외톨이들은 스스로를 비교의 늪으로 내몰기도 한다. D씨는 지방대에 다니는 30살 아들이 여동생의 결혼 소식을 듣고 상태가 더 악화됐다고 고백했다. "아들이 어느 날 '좋은 사위를 봐서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사위 10트럭 갖다줘도 안 바꾼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됐다'라고 하며 그냥 들어가 버렸다."

■손 내밀 곳 찾기 어려웠다

7월 6일 진행된 부모아카데미 2회차 모임에서는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센터장의 강연과 부모 아카데미에 참석한 부모들의 감상 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부모들은 "이전까지 아이의 상황에 대해 가족들에게도 쉬쉬하고 살고, 도움을 청할 곳을 찾기 어려웠다"며 "오늘 같은 모임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씨는 "10년 전에는 도움을 청할 곳이 많지 않아 김포에서 서울 끝으로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주말마다 강연을 들으러 찾아 다녔다"고 말했다.

F씨는 "주변 사람들한테 상담과 조언을 해도 일반적인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공감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애를 미워하게 되고, 창피를 당하는 것 같고 아이 탓을 하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모임에 와서 공감과 위로를 받고, 나를 돌아보니 내가 무의식 중에 부모에게 받았던 양육 방식을 그대로 했다는 걸 깨닫고 소름끼쳤다"고 했다.

G씨는 "은둔 생활 3년이 된 아이가 최근에는 거실에서 TV를 볼 때 옆자리에 앉기도 한다"며 "마음이 답답하긴 하지만 희망을 갖고 마음 편히 아이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쿠사 미노루 K2인터내셔널코리아 슈퍼바이저는 "과거 나를 이 지옥에서 누가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했는데 전문가들이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지옥에서 해방하는 열쇠는 나한테 있었다"며 "가족 내에서도 결국 아이와 부모가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조차 못내는게 현실 정부 전담조직 만들어야"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

"정부 부처마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와 관련해 권한과 범위, 사업내용 등이 달라 '핑퐁 게임'이 된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은둔형 외톨이 특별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통계라도 내면 좋겠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사진)는 지난해 1월 11일 은둔형 외톨이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한 최초의 공식단체를 만들었다. 아버지 없이 혼자 고군분투하며 경제활동을 하고 가정을 지키느라 아이에게 소홀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 대표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아이와 함께 일본에서 살았다. 일본 거주 2년째 되는 1989년 아들이 태어났다. 당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대학교 졸업생의 50%가 취직이 안되던 시기였다. 프리터들이 늘면서 은둔형 외톨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되던 시기였다.

경제활동에 전념하느라 이때는 미처 몰랐다. 한국에 돌아오고 아들이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본 관광가이드를 하느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수능을 앞두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주 대표는 "만약 그때 지금의 부모협회처럼 질문과 상담이 가능한 곳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올해 2년째를 접어든 주 대표는 각종 민간단체, 지자체 등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 지원을 위한 제도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 대표는 "전국 지자체나 국회의원들이 정책 연구를 하거나 공청회를 할 때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부모들의 목소리도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과거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 초기의 여러 시행착오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부서별 칸막이다. 은둔형 외톨이 사업과 관련해 현재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에 사업이 진행 중인데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부처간 '핑퐁 게임(일 미루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매번 전문가들을 불러 공청회도 진행하지만 결국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부처의 사업영역'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둔형 외톨이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가장 간단한 방법은 5년마다 전수조사로 이뤄지는 인구주택 총조사를 시행하며 은둔형 외톨이 관련 질문 2~3개만 추가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사업을 위해 질문을 추가하면 다른 부서의 불만이 쌓이고, 관련 법 개정 등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과거에도 은둔형 외톨이 관련 전문가들이 국무총리실에 불려가 정책 제언도 했지만 큰 진척은 없었다"며 "은둔형 외톨이 문제 지원법을 만들어도 그 법이 '청년법' '가족법' '정신질환법' 등 어떤 법이 되느냐에 따라 한계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주 대표는 "일본의 경우 2000년도에 은둔형 외톨이 지원을 위한 법제화가 됐지만 NHK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지원단체가 있어도 이용하지 않은 비율이 50%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학술논문과 연구발표, 이에 대한 공유도 필요하다.


주 대표는 "심리학 분야뿐 아니라 사회학, 복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한 학술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며 "정부 부처에서 이뤄진 연구용역 사업 결과도 진행만 하지말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이진혁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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