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조 슈퍼예산, 1064조 슈퍼 나랏빚
2021.12.03 14:36
수정 : 2021.12.03 14:5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년 예산 600조원 시대가 처음 열렸다. 국회는 3일 본회의를 열고 607조70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안보다 3조3000억원 증액된 역대 최대 규모다.
내년 슈퍼 예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 경제는 2년째 코로나 수렁에 빠졌다. 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힘들다. 오미크론 변이 출현으로 내년에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코로나 피해층을 지원하려면 재정을 넉넉히 꾸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하는 등 긴축 기조로 돌아섰다. 이럴 땐 재정이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정부 들어 예산은 5년 새 200조원 넘게 늘었다. 박근혜정부가 마지막으로 짠 2017년 예산은 400조원이었다. 문 정부가 마지막으로 짠 2022년 예산은 607조원이다. 이 바람에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늘었다. 중기 전망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6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아직 비율 자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낮은 편이다. 그러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게 문제다. 한국은 고령화와 저출생이 동시에 진행 중인 가운데 복지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돼 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나랏빚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문 정부는 좋은 평가를 받긴 글렀다. 오랜 기간 한국은 국가채무 비율 40%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방어벽은 문 정부 아래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돈을 펑펑 쓰기만 할 뿐 재정 기반을 확충하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산이 늘어도 세수 기반이 탄탄하면 빚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증세는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이때 정치인들은 흔히 욕을 덜 먹으려 인기 없는 증세 대신 손쉽게 국채를 더 찍는 우회로를 택한다. 바로 문 정부가 그랬다. 이러니 고된 일은 미루고 그저 광만 내려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내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선다. 이젠 차기 대통령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재정 정책만큼은 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다음 정부에서도 복지 확대는 불가피하다. 재원을 마련하는 길은 두 갈래다. 국채를 찍거나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는 가랑비에 옷 젖듯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증세는 고달프지만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이·윤 두 후보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