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속 기독교 혐오… 언행불일치 때문 아닐까요"

      2021.12.07 16:46   수정 : 2021.12.07 16:46기사원문
"현재 목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친구뿐 아니라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연기한 조폭도 제 중학교 동창이에요. 그들처럼 저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제겐 교회 공동체가 있었죠."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56)가 법관이 아닌 '신자'로 대중 앞에 섰다. 지난 9월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를 출간한 그는 청소년기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준 교회 공동체를 언급하며 "공기와 같았던 신앙 덕분인지 그 시절 친구 마음속에 있었다던 왠지 모를 분노가 내겐 없었다"고 돌이켰다. 2010년부터 8년간 우리나라에서 최장기간 소년재판을 맡아온 천 판사는 그동안 법정을 단순히 처벌이 아닌 회개와 용서,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만들어왔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을 돕는 사단법인 만사소년의 얼굴마담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해엔 소년범의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금은 부산지방법원에서 일반민사사건의 부장판사로 일하지만 여전히 '소년범의 대부'로 살고 있다.

―형제자매 중 유일한 대졸자라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를 개업해 동생들을 돕겠다던 애초 삶의 계획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죠. 대신에 '약자 중의 약자'인 위기 소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졌지요. 저는 부산 아미동 판잣집 밀집지역에서 자랐어요.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서 전 늘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1~2시에 일어나 공부했죠. 그런 제게 교회는 놀이터이자 공부방이었어요. 우연히 소년재판을 맡게 되면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났고 중학교 친구들도 많이 생각났죠. 신앙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깊어졌어요. 제가 법학만 배웠지 신학, 정치학, 사회학 등엔 관심이 없었는데, 소년재판을 맡게 된 후 관련 분야를 공부했고 지난해엔 '선, 정의, 법'을 출간했어요.

―소년재판 당시 가해 학생과 부모, 교사를 따끔하게 혼내는 동영상이 요즘도 인기입니다. 덕분에 '호통판사'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데요.

▲소년법을 보면 친절하고 온화한 태도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하지만 건당 1시간씩 배정되는 일본과 달리 당시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는 2~3분에 불과해 비행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선 호통을 칠 수밖에 없었어요. 또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를 10번씩 외치게 했는데 순간 원수 같던 부모 자식 관계가 굉장히 가까워집니다. 범죄란 무엇인가요? 관계의 파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깼듯, 그걸 회복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소년비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부터 무릎 꿇고 잘못을 구하도록 했습니다. 부모도 잘못했으면 무릎을 꿇게 했죠.

―늘 엄벌보다는 재범 방지에 방점을 찍고 계십니다.

▲그동안 1만2000여명의 소년범을 만나면서 느낀 건 '대다수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저소득층에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투표권이 없어 정치인들의 관심도 못받고, 가정이 해체돼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어른도 없어요. 회복센터에 입소한 애들의 90%는 아동학대 경험이 있어요. 그런데 학교나 사회가 이런 애들을 내치기 바쁘죠. 회복센터의 가장 큰 목적은 '나는 가정에서 받지 못한 걸 사회에서 받았다'는 기억을 심어 주는 겁니다.

―이번 신간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신자 천종호를 드러냈습니다.

▲1978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성경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여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어요. 그러다 예수님을 통째로 이해하고 싶은 갈망이 커져, 사복음서 중 가장 빨리 기록됐고 신학적으로 풀어야 할 내용이 적다고 생각한 마가복음을 선택, 본문의 맥락에 따라 읽고 말씀을 묵상한 결과를 이렇게 내놓게 됐습니다. 교회의 학생부, 청년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과 오랫동안 들은 설교와 독서에서 얻은 깨달음도 담았고요. 예수님의 일생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신학적·역사적 두 좌표로 접근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신화로만 해석되지 않도록 역사적 검증도 중요했습니다. 법학자 입장에서 법과 국가, 공동체 그리고 재판을 중점적으로 살폈습니다.

―빌라도의 재판 부분은 출간 전까지 묵상하셨다고요.

▲'하나님이 굳이 예수님을 이 법정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다 풀지 못한 채 탈고했다가 책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인류 전체를 대신해 이 법정에 섰다는 것을, 다시 말해 하나님이 피고인들인 온 인류를 예수님으로 바꿔치기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는 말씀 때문에 보통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에 있고 이 땅은 죄로 물든 곳이라 여기는데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곳에 와서 돌아가셨나?' 여기서 '내 나라'는 천국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인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을 축소시키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천국과 이 땅인 세상 모두를 의미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임시적으로 허용한 빌라도의 권위를 예수님이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라는 말씀을 통해 이를 가르치셨죠.

―'예수 공동체는 아동·여성 친화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고 열린 공동체이고 탈권위주의적'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들어도 참 급진적인 사상 아닌가요? 2000년 전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바울과 베드로 사도가 기독교의 급진성에 놀라, 씨앗도 트기 전에 사라질까봐 속도 조절에 엄청 애썼는데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자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를 실천하는 예수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내 나라는 여기 속한 게 아니다'를 오역해 기독교가 성속이원론으로 가면서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도가 낮았고, 공동체적 예배보다 개인적 명상을 선호하게 됐으며, '심판주로서의 예수님'보다 '사랑의 예수님'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전체를 위해 질서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프로테스탄트의 '공동선' 개념 회복이 필요합니다.

―판사라는 직업은 성경의 대주제로 언급하신 '죄와 심판'과 아주 밀접성이 높습니다. 판사로 일하면서 신앙관이 확립됐나요.

▲신앙은 정립돼 있었는데, 법에 적용하려니까 안 맞더라고요. 재판에선 서로의 권리만 주장하잖아요. 18세기 계몽주의 영향으로 세상은 권리사회가 됐고 이후 무신론의 세계하에 이 사회가 움직이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교회에서 배운 것과 현실에서 배운 학문 간에 교량이 없어요. 젊은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이제 기독교는 선, 정의,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저처럼 법학을 하건 정치학이나 사회학, 경제학을 하건 최고선인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이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다'고 했는데, 악한 것을 선으로 바꾸고 악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뿐이므로, 선은 곧 하나님을 뜻합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선의 미덕이 사라진 안타까운 시대'라고 지적하셨는데요. 흔히 선은 공익 등의 개념으로 통합니다.

▲선은 최고선이신 '하나님' 외에 세 가지 의미가 더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의 형들을 향해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라고 말했는데 이때 선은 사회적 가치로서의 선인 정의·자비 등을 뜻하며, "우리가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지니"에선 구원으로서의 선을 의미합니다. 또 로마서 13장에서 '만일 여러분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선한 일을 행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선은 질서를 뜻하죠. 이렇게 네 가지 선을 바탕으로 공동선을 이뤄가야 합니다.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선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인격을 닮도록 개개인이 노력해야 합니다.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며, 믿음, 소망, 사랑의 인격을 갖추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평소 마음에 품고 있는 성경 말씀이 있나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여름성경학교 암송대회에서 외웠던 '로마서 12장 2절'이 제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흔히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는데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되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답게 품격 있게 살고 싶다고 했는데요. 판사님이 생각하는 품격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첫번째는 언행일치입니다. 요즘 화제인 '오징어게임'에도 기독교에 대한 어마어마한 혐오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요.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무시하는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행불일치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함부로 말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혐오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웃뿐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계명을 갖고 있는 종교인데, 이웃 사랑도 안 하잖아요. 이웃 사랑의 출발점은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겸손하자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너무 높아서 절대 지킬 수가 없으니,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이미' 영생을 확보했으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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