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한류 두려워 못푸나

      2021.12.07 18:00   수정 : 2021.12.09 08:10기사원문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두고 한국과 중국의 생각은 확실히 다르다. 양국 고위급 회담에서 문화 교류 발언이나 한국영화의 중국 상영 재개 상황을 보면 이런 현실이 뚜렷해진다. 최소한 겉으론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화교류에 적극 협조키로 했다는 말이 나오고 한국영화가 다시 중국 스크린에 걸렸으니 당연히 뒤따라올 만한 해석이다.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실제 분위기는 명확히 차이가 난다.


지난 3일 중국에서 특파원들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측이 문화콘텐츠 교류에)굉장히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날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의 회담 결과 백브리핑 자리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자르고 "나도 얘기해도 되겠느냐"며 이런 말을 먼저 꺼냈다. 청와대 역시 "'특히', 중국이 적극 노력 중이라고 했다"고 자랑했다. 얼마 뒤 중국도 발표문을 냈다. 다만 내용은 뭔가 허전하다. 양 위원 발언에는 '문화' 혹은 '문화콘텐츠'라는 단어도, '적극 노력' 등의 문구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자주의, 공급망 안정성 등 중국의 이전 주장들만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한국영화 '오 문희'가 같은 날 중국에서 개봉했다. 6년 만의 한한령 돌파라며 한국에선 들뜬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중국이 개봉 이틀 전에서야 상영 사실을 알렸고 횟수도 중국 본토 전역의 1.5%로 제한했는데, 처음부터 호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중국 외교부에 직접 이유를 물어봤더니 "아직은…"이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전혀 다른 두 사례지만 한중의 입장 측면에서 보면 패턴이 유사하다. 한국이 문화 교류를 요구하고 중국이 화답해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중국의 행태를 보면 마지못해서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국제 정세와 한류의 힘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할 중국 입장을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미중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동북아의 대표적 강국인 한국을 자국 세력에서 제외하거나 미국에게 빼앗기면 형세가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반면 한류의 세계적 장악력을 봤을 때 한한령을 풀어주면 기하급수적으로 잠식될 중국 문화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을 것 같다.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21~2022년 한중 교류의 해와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을 강조해 왔다. 한중 만남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양 위원도 회담에서 이를 언급하며 "보다 성숙하고 건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한한령을 거둘 시기도 됐다.
한한령을 '안 푸는' 게 아니고 한류가 두려워 '못 푸는' 것이라는 지적을 더 이상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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