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도 소통 못했는데… "단골 손님들이 저를 찾아 와줘요"

      2021.12.14 18:04   수정 : 2021.12.14 19:4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고요? 단골 손님들이 저를 찾아 올 때요."

지난 13일 오후 일본 도쿄도(都)내 니시도쿄시의 한 서점.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곳의 다른 한쪽은 수제 인형을 만드는 공방이기도 하며, 또 다른 쪽은 헌옷 등을 파는 잡화점이기도 하다. 인형들은 일본 도쿄 내 대형백화점과 도쿄도청 등에서 실제 판매되고 있다.

서점이기도 하며 공방, 잡화점인 이곳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교육·지원 단체인 YL히바리가오카 칼리지가 사회 적응을 위해 직업 연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YL히바리가오카 칼리지는 이곳 외에도 이 지역에 6곳 정도의 식당, 서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일종의 실습장인 셈이다.


현장 도착 당시,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도가와 료코씨(35)는 문밖까지 나와서 점포를 나가는 손님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약 10년간 히키코모리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인간관계가 수월하지 않아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었죠." 상태는 계속해 악화됐었고, 가족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한국 취재진을 보자 그는 밝은 표정으로 대뜸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라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반겨줬다.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오래 전, 한국 남자와 결혼한 부친의 회사 동료가 집에 와서 알려줬다고 했다. 긴 세월 스스로에게 갇혀 누구보다도 혹독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어깨너머로 배운 한국어를 정확히 기억해 내면서, 취재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줬다. 그가 YL히바리가오카 칼리지에 오게 된 것은 약 5년 전쯤이다. "스태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고 했다.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니, "단골 손님들이 저를 찾아줄 때요"라고 했다. 지역 어르신들이 "저 친구 때문에 온다"고 호응해 줄 정도다.

이곳에서 그는 손님을 맞이한다든가, 기부 받은 옷들을 정리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정면 사진도 좋다"며 밝게 웃었다. 촬영에 응하는 동안도 한국 취재진을 향해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공유를 좋아하고, 영화 어린신부를 보고 문근영과 김래원을 좋아한다"고 말해, 되레 대화의 연결고리를 적극 만들어줬다.


현장 한쪽 사무실에서는 사에키 카나씨(35)가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에키씨에게도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던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고교 2학년이 되어선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고, 중퇴 후 히키코모리로 지냈다. 그러던 중 2016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됐고, 더욱 더 자신만의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집 안은 엉망이었고, 세상과의 끈은 보이지 않았다. 시청 직원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YL히바리가오카 칼리지를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의 사진, 동영상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고, 기부 받은 책들을 분류 하는 등의 업무를 맡으며, 본격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거의 마쳤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일본에서 등교 거부를 한 초·중·고교생은 약 19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도 415명으로 사상 최다였다.

'등교거부 등 히키코모리 상태로 현재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아닐까요." 그 역시 초반에는 이 단체 강사나 스텝들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가다 안가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거쳐, 지금의 그는 "안정감을 찾았다"고 말한다.

YL히바리가오카 칼리지는 현재 설립된 지 약 5년이 됐다. 단체는 사회복지 전문가인 오치 유코 대표가 이끌고 있다. 수입이 없는 경우 입회비와 수강료는 0엔이다. 히키코모리들에게 일종의 학교이자,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프로그램은 월요일 오전 9시부터 토요일 오후 3시50분까지 빼곡하다. 토요일까지 강좌를 만든 이유를 물으니, "체력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장기 칩거생활로 체력이 극도로 저하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일 칼리지 건물 1층에는 관심분야 강의 시작을 기다리는 수강생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취재진의 방문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는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운 지 얼른 자리를 뜨기도 했다. 오치 대표는 "계속 칩거하는 사람들에게 1년간은 방문해서 점점 밖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그런 뒤 1~2년간은 요리든, 펜글씨든, 성경 강독이든, 점포 관리든, 컴퓨터든 당사자들이 요청한 내용으로 강의를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이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니 꼭 참가해 주세요"라고 다시 요청을 한다는 것이다.
의무감의 부여다. 그는 "우리 단체는 어디까지나 '통과 지점'의 한 곳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섬세한 능력'들을 끌어내서 기업에 취직하고, 일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김도우 팀장 이환주 이진혁 기자 조은효 특파원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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