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생 김지영

      2021.12.15 18:00   수정 : 2021.12.15 18:00기사원문
김지영씨는 대표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할 때도 울지 않았다. 김은실 팀장이 나중에 꼭 같이 일하자고 할 때도 울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짐을 챙겨 나올 때도, 마지막 퇴근길에도 울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 정대현씨에게 우유를 데워주고 배웅해준 뒤 침대 주변을 왔다갔다하다 김지영은 현실을 자각한다.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퇴사 즈음 장면이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김지영은 정대현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낳아도 맡길 곳이 막막한 김지영에게 선택지는 출산휴가냐 육아휴직이냐 퇴사냐 세 종류다. 일단 휴직, 추후 안되면 퇴사라는 어중간한 방법을 생각 안한 건 아니지만 소규모 홍보대행이 주업무였던 회사 처지를 고려해 그 카드는 버린다. 결국 퇴사밖에 없다. 그때 나이 서른둘, 2014년이다. 그해 통계청이 파악한 여성의 삶에 따르면 대한민국 기혼여성 다섯 중 한 명이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온다. 김지영은 그렇게 대한민국 30대 여성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통계청이 1983년 출생자 76만여명의 생애를 분석한 자료를 14일 발표했다. 이들 중 결혼한 이는 셋 중 둘, 결혼 나이를 보면 남자는 서른, 여자는 스물아홉에 많이 했다. 여전한 건 김지영들의 삶이다. 83년생 기혼여성 가운데 넷 중 하나가 출산 뒤 직장을 그만뒀다. 출산 후 직장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지만 월급은 종전 대비 80%대다. 소설 속 김지영도 새 일자리를 알아본다. 간신히 잡은 게 마트 입구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직이다.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이와 맞물린 가정 전체의 피로감이 저출산으로 귀결된다. 통계청이 며칠 전 발표한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50년 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노인의 나라다.
2070년 전체 인구 중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가 62.2세다.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다.
꼬일 대로 꼬인 인구정책 실마리를 김지영 연구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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