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혐오가 만연한 한 해, 이 책들로 힐링했다
2021.12.23 16:02
수정 : 2021.12.23 16:02기사원문
■헤이트,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서울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 역사, 사회 분야 교수 9명이 함께 쓴 책 ‘헤이트’(마로니에북스 펴냄)는 인류를 고통으로 내몰았던 역사 속 이야기와 현대사회의 혐오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공감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서술했다.
책은 지난 2020년 티앤씨재단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공감 콘퍼런스 ‘바이어스 바이 어스(Bias, by us)’의 토론 내용 전문을 담았다. 사흘에 걸쳐 진행된 콘퍼런스의 전체 영상은 누적 조회수 92만여회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심리학, 법학, 철학, 인류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혐오’라는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는 혜안은 꽤나 흥미롭다. 책의 서두에 담긴 다섯 편의 추천의 글, 그리고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의 생각을 담은 서문도 혐오 문제를 바라보는 이 책의 다양한 시선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책에서는 혐오가 공감의 반대말이 아니라, 선택적 공감의 극단적 모습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특히, 책은 ‘공감’이라는 명분 아래 특정 집단만을 옹호하며 타인을 향해서는 오히려 편향된 시선을 던지는 모순된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혐오를 알아채지 못한 채 문제 해결보다 분노를 쏟아낼 희생양을 찾는 요즘 행태에 경각심을 품게 한다. 책은 오늘날 인터넷 매체에서 넘쳐나는 혐오 표현들도 그 근원에는 그릇된 공감 심리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마녀사냥, 홀로코스트, 이슬람 혐오, 르완다 학살 등 책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혐오의 문제가 먼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혐오를 멈추지 못하고 극단에 달했을 때 역사는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끝으로 책은 잘못된 이분법 대신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성숙에 대한 목소리를 전한다.
■혐오 없는 삶 ,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독일 작가 바스티안 베르브너가 쓴 ‘혐오 없는 삶’(판미동 펴냄)은 하나하나의 사람이 아니라 집단으로 접촉했을 때의 역효과에 대해 주목한다. 저자는 ‘우리’와 ‘그들’이 만날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부족적 사고가 극대화 됨을 보여준다. 접촉이 늘 공감을 불러온다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는 뜻밖의 성찰이다.
누구도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의 서문을 쓴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말처럼 우리의 뇌는 낯선 존재에 대해 적대적이나, 오늘날 혐오가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은 그런 본능 때문이 아니라 혐오를 결집의 도구로 활용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접촉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단, 작고 비정치적인 상황에서 사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그리고 편견을 버리고 혐오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2018년, 독일 전국에서 8000명 이상이 모여 대화하며 각자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를 마련해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했다. 저자는 2019년 동성애 혐오자와 동성애자의 우정을 다룬 기사 ‘나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독일에서 최고의 르포르타주에 주어지는 에곤 에르빈 키쉬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우리시대의 병적 징후들, 위기에 빠진 21세기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남긴 이 말은 ‘병적 징후’들이 가득했던 1930년의 공백기에 대한 것이었다. 영국 최고의 역사학자로 꼽히는 도널드 서순 런던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책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뿌리와이파리 펴냄)은 90년이 지난 지금 그람시가 남긴 말이 주는 기시감에서 출발한다.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을 거듭할 것 같았던 세계 경제는 코로나 이후 다양한 ‘병적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증폭되고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전 세계적으로 혐오를 무기로 삼은 포퓰리즘이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횡행한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데 합의가 이뤄졌지만 실제로 파국으로 가는 속도가 늦춰지고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저자는 “병든 시대엔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거인들의 기억을 잃은 난쟁이들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렇게 저자는 ‘병적 징후’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오늘날의 위기를 진단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의지의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