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대선판, 유권자를 뭘로 보고 이러나

      2021.12.21 18:00   수정 : 2021.12.21 18:00기사원문
어김없다. 한국 정치 특유의 이판사판이 또 시작됐다. 오로지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위한 정략이 판을 친다.

아니면 말고 식 흑색선전이 춤을 춘다. 덩달아 여론도 출렁거린다.
국가 운명을 결정할 대선이 가족 리스크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댄다. 유력 대선후보 집안이 뒤엉킨 난타전이다. 아들, 배우자, 장모까지 난도질을 당한다. 낯뜨거운 저속한 공방이 신문·방송·온라인을 도배한다.

그 탓에 정작 우리가 다뤄야 할 과제는 구석에 처박혔다. 대한민국은 G10을 넘어 G7을 향해 가는데 정치는 구태의연하기가 무쇠처럼 단단하다. 대선이 장관 인사청문회를 닮아가고 있다. 후보자 역량 검증은 뒷전이고, 가족사(史)를 캐는 데 혈안이다. 이러니 삼류 정치 소리가 나온다. 이대로 가면 차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최악의 혐오선거가 된다. 도리 없다. 깨어 있는 유권자가 눈을 부릅뜨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중상모략을 일삼으면 오히려 된통 당한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배우자 덫에 걸렸다. 배우자 김건희씨는 '쥴리' 논란에 이어 가짜 이력, 가짜 학력 의혹에 휩싸였다. 윤 후보는 머리를 숙였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 후보의 사과에 대해 "한마디로 개 사과 시즌2"라며 "사과의 내용도 등 떠밀려 억지로 나선 속내가 역력했다"고 비꼬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아들 수렁에 빠졌다. 장남(29)은 불법 도박과 성매매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언론 보도에 나온 카드게임 사이트에 가입해 글을 올린 당사자는 제 아들이 맞다"며 "제 아들의 못난 행동에 대해 실망했을 분들에게 아비로서 아들과 함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성매매 의혹에 대해선 "본인이 맹세코 아니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힘은 '부전자전'이라고 비꼬았다.

과거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을 두고 병풍(兵風)이 세게 분 적이 있다. 의혹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의혹을 풀무질한 김대업씨는 구속됐다. 20여년이 흘렀으나 한국 정치는 김대업류의 구태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선거는 갈등을 조율하는 예술인데, 한국에선 갈등을 조장하는 외설로 변질됐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정적 이슈를 놓고 국록을 받는 이들이 원수처럼 으르렁댄다. 코로나 위기 속에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기승전 대권이다. 세금이 아깝다. 국민이 무슨 죄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한국 정치의 극한 대립은 승자독식 구조에서 온다는 게 정설이다. "패배하면 모든 걸 잃는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따지거나 주위나 사회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한다"(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대한민국 금기 깨기'). 근본 해법은 승자독식 구조를 깨는 데 있다. 헌법 개정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할 수 있다.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거나 선출하는 방법도 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장관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헌법을 바꾸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개정이 될지 안 될지조차 불투명하다.

당장 내년 3월이 대선이다. 현실적인 해법은 눈을 부릅뜬 유권자가 판을 더럽히는 야바위꾼, 쭉정이를 솎아내는 것이다. 정치가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면 유권자가 매를 들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표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이다. 마타도어가 득표에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태도를 바꾸는 게 바로 정치인이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둘 다 아웃사이더다. 이 후보는 중앙 정치무대에 발을 디딘 적이 없다. 윤 후보는 평생 검사만 한 정치신인이다. 그런데도 당원과 시민들은 두 사람을 후보로 뽑았다. 왜 그랬을까. 여의도 정치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바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실망이다. 혼탁한 대선판을 바로잡는 것은 두 사람의 책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리더십이다. 승리에 눈이 먼 선거캠프의 정치공학은 유권자의 혐오증만 키울 뿐이다. 득실을 놓고 표 계산만 하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의 태도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치란 바르게 해주는 일이요, 백성들이 고르게 먹고살게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란 진실로 용인과 이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했다(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풀어 쓰는 다산이야기'). 인재를 등용하고 물산을 풍족하게 해서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라는 얘기다. 지금 한국 대선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은 정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내년 3월 9일 유권자는 대통령을 뽑으러 투표소에 간다. 이게 본질이다. 후보의 배우자와 자식은 곁가지 참고사항일 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선 곤란하다.
차기 대통령은 성장, 분배, 양극화, 부동산, 복지, 인구, G2 샌드위치 난제를 풀 유능한 인물이라야 한다. 이제 유권자가 죽비를 들 차례다.
깨어 있는 유권자만이 케케묵어 쉰내가 나는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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