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4캔 만원' 10년째 이상하지 않나요…소비자에게 최선?"
2021.12.23 07:07
수정 : 2021.12.23 07:07기사원문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수입맥주 가격이 어떻게 10년 동안 네캔에 만원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4캔 만원 마케팅을 계속 유지하면 결국 소비자들은 좋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듭니다"
새로운 시각이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이지만 퇴근길 들른 편의점에서 맥주 4캔을 만원에 살 수 있는 것은 마냥 행복이었다. 그동안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3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앞자리를 바꿔 달았고 치킨은 2만원인 시대이지 않은가.
그래서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이하 어메이징) 대표의 문제제기는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가 오르는데 맥주 가격은 제자리?…"가격 다양화 필요"
김 대표는 지난 21일 전화인터뷰에서 "(행사 가격을 맞추다 보면) 맥주 수입사들도 독일 맥주와 같은 고급 맥주를 들여오지 못 한다. 품질 좋은 수입 맥주는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며 "결국에는 편의점 소비자가 피해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4캔 만원은 여러 제품이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2캔 만원' 또는 '3캔 만원' 행사도 생겨서 프리미엄 제품을 위한 선택지가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경 대표는 2016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시작한 작은 브루 펍을 국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제맥주사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P&G에서 마케팅 역량을 쌓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에서는 벨기에 주류업체 AB인베브의 오비맥주 인수건을 맡기도 했다.
최근 '곰표 밀맥주'와 같이 편의점을 중심으로 번져간 수제맥주 인기는 연중 상시 진행 중인 '4캔 만원' 행사에 힘업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캔 만원은 약 10년 전 수입맥주 붐이 일면서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에 많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편의점이 내놓은 일종의 마케팅이다. 4캔 만원 자체는 편의점에 큰 수익이 되지 않지만 간식이나 안주와 같은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메이징이 내놓은 인기 수제맥주 '첫사랑'·'서울숲 수제라거'·'노을 수제에일'·'진라거'도 김 대표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최근 국내 수제맥주 인기가 수제맥주사의 장점인 '다양성'에 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최근 자체 조사에서 맥주 음용 빈도를 확인해보니 10번 마실 때 최대 7회까지 수제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여러 맥주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졌고 흥미로운 제품도 수제맥주가 압도적으로 많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 사태는 수제맥주 부흥기를 일으킨 동시에 혼란을 안겨준 시기이기도 했다. '홈술족' 덕분에 편의점 맥주 소비량은 늘었지만, 외식이 어려워지며 생산량을 예측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외식을 할 수 있는 룰이 거의 3주마다 바뀌다보니 소비자가 술을 집에서 마실지 밖에서 마실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며 "중국과 일본은 온라인에서 맥주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캔을 생산하면 되지만 우리는 케그와 캔 수량 예측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노을 보며 '노을 페일에일' 작명…"내년 제2 브루어리에서 양산 돌입"
자신을 '흙수저'라고 칭한 김 대표의 성공은 하루 아침에 이룬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저는 다른 대표들처럼 부자도 아니다"라며 "처음 시작할 때는 캔 맥주를 공장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회사를 그렸지만 돈이 없어 2016년 성수에 맥주집부터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주변에서 "이게 호프집이지 맥주회사냐"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번듯한 맥주 공장을 차리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와 본엔젤스로부터 20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2019년 경기도 이천에 4959㎡(약 1500평) 규모 제1 브루어리를 열었다. 월 최대 생산량은 150톤에 이른다.
서울숲이나 노을과 같은 독특한 이름은 김 대표의 작명 센스다. 그는 "성수동 펍에서 같은 맥주를 각기 다른 이름으로 팔아보면서 어떤 이름이 가장 인기가 있는지 테스트한다"며 "하루 20분만 볼 수 있는 노을처럼 일상의 순간을 '어메이징하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를 술 이름에 담는다"고 말했다. 최근엔 양자역학에 빠져 '슈뢰딩거 의 고양이'나 '암흑물질'과 같은 이름도 선택지에 올렸다.
어메이징은 내년 상반기 이천에 제 2브루어리 가동을 앞두고 있다. 제2 브루어리에서 한 달에 생산할 수 있는 맥주는 약 600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환산하면 한 달에 500㎖ 맥주 150만캔을 만들 수 있는 규모다.
김 대표는 제2 브루어리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는 "제2 브루어리에선 첫사랑을 대량 생산해 저렴하게 판매해볼 생각"이라며 "주종 다양성도 고려해 내년에는 무알코올 제품이나 김포 쌀을 사용한 전통주 제품도 새롭게 출시해보려 한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