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착한 아들 만호야, 어딨니"
2021.12.27 15:38
수정 : 2021.12.27 15:3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우리 만호는 착한 아이였어요. 우리 착한 만호 찾아야 하는데…"
자그마치 44년이 흘렀다. 봄 기운이 완연하던 1977년 5월 28일 토요일.
반팔 줄무늬 셔츠와 청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선 김만호군(당시 만 5세)은 이날 이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올해로 77세가 된 만호군 어머니 조희성씨는 "만호와 같이 놀러나간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허름한 복장의 할아버지가 데려갔다고 했다"며 "사방으로 찾아봤지만 여지껏 소식이 없다"며 힘들게 숨을 몰아쉬었다.
27일 아동권리보장원 등에 따르면 만호군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언덕 위 교회가 올려다 보이는 주택가에서 살았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유치원이 있었다.
당시 만호군은 눈이 작은 편이었고, 갸름한 얼굴형에 쪽박귀를 가졌었다. 손을 오밀조밀하게 오므려 모은 것처럼 생긴 귀라고 해서 쪽박귀라고 불렀다.
어머니 조씨에게 만호군은 뭐든지 잘 먹는 착한 아들이었다. 몸에 흉터 하나 없이 키운 귀한 아들이었던 만호군은 말수가 적어 여느 또래에 비해 조금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만호군 위로 누나가 있었지만, 누나는 서대문 큰집에서 지내 기억이 거의 없다. 다만 아래로 하나 있던 여동생을 살뜰히 챙겼다. 만호군의 여동생은 "저는 당시 태어나지 않아 만호오빠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얘길 들어보면 만호오빠가 먹을 것이 있으면 동생에게 나눠주고 양보하는 오빠였다고 들었다"고 했다.
만호군 가족은 당시 큰 방 두 개에 주방으로 이뤄진 구조의 주택 1층에서 지냈다. 이 중 방 하나는 세를 내주었고 만호군 가족은 남은 큰 방 하나에서 함께 지냈다. 겨울이면 방 안에서 종이접기를 하거나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았다.
어머니 조씨는 만호군에게 어묵과 감자를 간장에 조린 반찬을 주로 내주었다. 된장을 풀어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된장국도 어머니의 밥상에는 자주 올랐다. 그러다 만호군의 생일이 되면 어머니는 고기를 넣고 뽀얀 미역국을 끓였다.
안타깝게도 만호군 어머니의 건강은 최근 악화됐다. 폐암으로 잠시 동안 대화에도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3개월간 입원해 있다 최근에 나왔다. 온 몸이 다 아프다"며 "우리 만호,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며 흐느꼈다.
어머니는 이어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을지 너무 궁금하다"며 "꼭 살아서 얼굴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