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뛰는 몸값에도 "없어서 못산다"…명품 전성시대

      2021.12.28 06:50   수정 : 2021.12.28 09:01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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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2021.11.2/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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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내 롤렉스 매장을 지나는 모습. 2021.8.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편집자주]"10년간 일어날 변화가 1년으로 축약됐다"
최근에 만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고 쿠팡은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GS리테일은 GS홈쇼핑과 합병한데 이어 요기요까지 인수했고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로 성장한 네이버는 2위와 격차를 더 벌리고 있습니다.

올해 유통가를 뜨겁게 달궜던 10대 뉴스를 정리해 봤습니다.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명품'은 지난 2년간 유통업계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였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소비자들이 '보복 소비'로 값비싼 명품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고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 마자 매장으로 달려가는 현상)이 한층 심화되면서 연일 화제를 모았다.

특히 가격을 올리면 올릴수록 오픈런은 강도를 더했다. '오픈런 명품'의 시초인 샤넬은 올해 4차례 가격 인상을 했지만 매장에 재고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는 물론 시계·주얼리·잡화까지 명품 브랜드는 잇단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샤넬 4번·루이뷔통 5번 '역대 최다급 가격 인상'

28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명품업계가 지난해부터 2년간 "역대 최다급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코로나19로 제한적인 여행기회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억눌린 소비 심리가 폭발한 것이 명품 구매욕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명품 중의 명품' 샤넬은 올해 네 차례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1년에 네 차례나 가격을 인상한 것은 이례적인 행보다. 실제 샤넬은 지난 2월 일부 품목을 2~5% 올린 데 이어 7월에는 클래식백·보이백·19백 등 스테디셀러 라인의 가격을 12% 인상했다.

특히 샤넬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클래식백의 가격은 코로나19 이후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 초 864만원이었던 클래식 플랩 미디엄백의 가격은 지난 11월 1124만원까지 치솟았다. 1년도 안 된 기간 동안 200만원가량이 훌쩍 오르며 샤넬백 1000만원 시대를 열었다.

루이뷔통도 올해 5차례나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10월에는 일부 핸드백의 가격을 최대 33% 인상하기도 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알마BB'의 경우 200만원대로 올랐다. 이 밖에 가격을 올린 대표 제품으로는 모노그램·앙프렝뜨 등이 있다. 또 디올을 3번, 프라다는 5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핸드백만이 아니다. 럭셔리 시계 브랜드도 올해 말 들어서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대표 제품은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시계로 알려진 오메가의 '씨마스터 다이버 300'이다. 이 제품은 이달 초 가격이 기존 67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소폭 인상됐다. '예물 시계'로 잘 알려진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피아제'도 지난달 중순 3~5%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올해만 두번째 인상이다.

명품 기업은 가격 인상의 배경으로 원부자재 및 인건비 인상, 환율 등의 이유를 꼽았다. 다만 유독 한국에서만 잦은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것과 과도한 오픈런을 부추긴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역대급 가격 인상에도 계속되는 오픈런

다만 일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오픈런 현상도 한층 심화되고 있다. 언제 가격이 오를지 예상할 수 없는 만큼 오픈런을 해서라도 제품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에는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면 올 겨울에는 한파를 대비해 꼭두새벽부터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이른바 '캠핑족'까지 생겨났다. 이 같은 현상은 샤넬뿐 아니라 에르메스·롤렉스 등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무리해서라도 오픈런에 도전하는 이유는 원하는 핸드백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제품을 구하지 못하면 웃돈을 얹어야만 손에 쥘 수 있다. 실제 롤렉스 시계의 경우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는 10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명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A씨는 "집 근처에 백화점이 있어 수시로 오픈런에 도전하고 있지만 원하는 핸드백 모델을 구경도 못해봤다"며 "수시로 하는 오프런에 지쳐 구매대행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일부는 '완불 웨이팅'도 자처하고 있다. 직장인 B씨도 최근 부모님 선물로 디올의 스테디셀러 핸드백인 '레이디디올'의 값을 미리 지불하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B씨는 "디올도 가격 인상 소식이 들려오는데, 당장 핸드백을 받지 못하더라도 미리 결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라 생각해 완불 웨이팅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다"고 설명했다.

◇'베블런 효과' 노리는 명품 기업

그렇다면 수요가 치솟는 가운데 명품 브랜드가 공급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목표는 단발성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창출하는 데 있다. 다만 잇단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고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샤넬이 가격 인상을 네 차례나 단행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넬 핸드백을 구매하려는 이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오픈런을 하러 새벽부터 집에 나서는 현상도 일고 있다.

다만 '샤넬 열풍'에도 불구하고 회사 매출은 큰 폭으로 늘거나 줄지 않았다. 명품 수요가 늘더라도 제품을 더 만들거나 판매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실제 일부 명품은 브랜드 희소성을 위해 팔리지 않는 극비에 재고를 태워 소각하는 것은 업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해 명품 기업의 매출은 크게 늘거나 줄지 않았다. 샤넬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3% 감소한 9295억원을 기록했다. 언뜻 보기에 매출이 크게 감소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코로나19 여파로 면세점 매출이 줄어든 때문이다. 다만 면세업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일반 판매점이 매출 하락을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4% 증가한 1491억원을 기록했다.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소폭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6% 늘어난 4191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영업이익은 16% 늘어난 1334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명품 브랜드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가격이 인상된 상황을 고려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는 아니다.

심지어 '롤렉스'를 판매하는 한국로렉스도 매일 새벽 오픈런 행렬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0% 줄어든 232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익은 49% 감소한 283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달리 명품 브랜드는 수요가 늘어난다 해서 상품을 더 만들거나 더 팔지 않는다.
많이 팔리게 되면 그 만큼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재고관리에 엄격한 편"이라며 "다만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진 만큼 명품업계는 재고를 많이 푸는 대신 잇단 가격 인상으로 수익을 내는 방식의 '배짱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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