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말-유럽 가스관

      2021.12.28 18:27   수정 : 2021.12.28 18:27기사원문
오스트리아 빈에서 장기체류를 위해 집을 구하러 다닌 적이 있다. 10여년 전 일이다. 벨베데레 궁전 근처 아담한 집을 보여준 주인은 금발의 중년 부인이었다.

집에 대한 부인의 짤막한 브리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러시아로부터 안전한 집이에요." 러시아가 가스밸브를 잠근다 해도 걱정 없는 난방시설을 갖췄다는 것이 요지였다.
걱정 많은 부인이라는 생각을 당시에 했건만, 돌아보니 오판이었던 거 같다.

러시아의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공급이 27일(현지시간)로 1주일째 중단되면서 유럽시장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세를 기록 중이다. 유럽 가스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 천연가스 가격은 이날 1㎿h당 180유로로 사상 최대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야말~유럽 가스관의 출발지는 러시아 땅끝마을 서시베리아 야말반도다. 툰드라의 광대한 벌판에서 주민들은 순록을 키우며 산다. 이 지역에 가스전이 개발된 것은 1970년대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시작해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까지 이어지는 2000여㎞ 가스관을 깔았다. 야말~유럽 가스관이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의 20%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기대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밸브 하나로 서유럽을 압박할 수 있는 이유다. 러시아는 분쟁 때마다 이를 활용해왔다. 이번에 노리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위권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여부를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동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 확장에 군사적 대응 불사를 선언했다. 서방은 푸틴의 진짜 속내가 우크라이나 전체 합병일 걸로 본다.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했던 이가 푸틴이다.
그는 과거 소련의 영광에 향수를 품은 러시아인들을 자극한다. 가스, 자원은 이를 실현시켜줄 무기다.
비단 러시아만의 일일까. 가스든 원유든 희토류든 자원부국은 늘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욕구를 느낀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