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가족검증이 아니다

      2021.12.29 18:00   수정 : 2021.12.29 18:26기사원문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선거과정에서 힐러리 지지자들이 재미있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하나 사면 덤으로 하나 더 드려요(buy one, get one free)'가 그것이다.

힐러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뜻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성추문으로 명성에 손상은 입었지만 경제를 부흥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아내의 선거를 도왔다. 힐러리가 당선될 경우 빌 클린턴이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된다는 기사도 쏟아졌다. 하지만 선거결과를 보니 남편 빌 클린턴을 내세운 선거 전략은 그다지 먹히지 않았던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시절에 발생한 개인 e메일 스캔들이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고 어설픈 대응이 악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은 배우자가 덤으로 오는 효과보다 후보 본인의 국정운영 능력이나 도덕성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쟁을 하고 있지만 두 후보 모두 불행하게도 가족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한쪽은 아들의 불법 도박과 성매매 의혹, 다른 한쪽은 배우자의 이력서 경력 부풀리기 의혹이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는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 가족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유난히 예민하다. 과거 현직 대통령의 가족이 호가호위하다가 구속되어 교도소에 갔던 사례들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죄목도 횡령, 뇌물 수수, 사기, 수뢰 및 탈세 등 다양하다. 법을 위반하지는 않더라도 대통령의 가족이기 때문에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있고 지켜야 할 규범이 있는데, 이를 어기는 사례는 아직까지 반복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가족 검증이 당연하다는 응답은 68%,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28%로 나타났다. 무엇을 기준에 두고 후보를 선택할지 판단은 국민의 몫이지만 관심이나 비판이 후보자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철학보다 가족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또, 선거를 하는 이유는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는 향후 5년을 이끌고 나갈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 5년 전에는 최순실 사건으로 얼룩진 국정에 대한 실망으로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였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하에 탄생한 정부였지만, 지난 5년의 국정평가는 내년 3월 9일 국민들이 직접 내려 줄 것이다. 경제 침체와 사회의 양극화 심화, 아파트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 최악의 청년실업 등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내년 탄생할 새로운 대통령은 내편만의 이념구현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나라 발전과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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