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청구권 보장 못하는 공익소송 패소자부담 이제는 바꿀 때
2022.01.16 15:50
수정 : 2022.01.16 15:50기사원문
법조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1990년부터 이어져 온 민사소송 패소비용 부담원칙에 대해 공익소송의 경우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현행 민사소송법은 공익 소송 당사자들의 재판청구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30년 전 군사정권 때 생겨 현재까지 유지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민사소송법109조를 통해 패소자부담 원칙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조문 번호만 개정하고 그대로 유지 중이다.
박호균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는 "입법 당시 시민사회 단체나 일반 국민들의 충분한 검증 없이 군사정부 시대에 남소 방지라는 목적에 치중해 민사소송법을 개정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소송, 환경소송 등에서 일률적으로 변호사 보수 패소자부담 원칙을 관철해 재판청구권의 과도한 제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11월 '신안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 7명이 국가와 신안군, 완도군에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해 697만2000원의 피소비용을 납부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외에도 지하철 낙상과 의료사고 사건(패소비용 1억원), 농약 중독으로 인한 보험금 청구 패소 사건(패소비용 950만원) 등 공익소송의 부작용 사례가 여럿 드러났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의 경우 다수의 이해가 걸린 공익적 성격을 띤다. 또 보험사 보험금 지급 소송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있다.
■선진국, 소송비용 각자부담 vs 패소자부담
선진국의 경우 나라마다 각자부담 원칙과 패소자부담 원칙 등 국내 상황에 맞춰 각자 다른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각자부담 원칙이다. 다만 미국은 연방법·주법을 2200여개를 제정해 인권소송, 소비자보호소송, 고용관계소송 등 공익소송에 대해 예외적으로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적용한다. 공익소송 당사자가 승소할 경우 원고는 변호사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반대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패소자에게 법원이 재판비용만 청구하고 변호사 보수는 각자 부담한다.
독일과 영국은 패소자부담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독일은 변호사 보수가 법으로 정해져 있어 소송비용이 저렴하고 소송비용보험이 사회 전반에 보급된 상황이다. 소송비용이 고액화 된 영국은 '보호적비용명령(Protective Cost Order)이라는 부가적 제도를 통해 법원이 패소자에게 부과된 소송비용 지불의무를 면제하거나 지불해야 할 소송비용의 상한을 설정한다.
박 변호사는 "영국과 미국은 변호사 비용에 관해 패소자부담주의와 각자부담주의라는 서로 상반된 제도를 취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각 제도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를 둬 소송당사자들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익소송에만 예외적용…부작용 우려도
공익소송을 패소자부담 원칙 적용의 예외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승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사무관은 "공익성이 있다는 이유로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승소가능성이 낮아도 사회적 환기를 목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등 남소·남상소가 만연할 우려가 존재한다"며 "남소·남상소로 국민의 권리구제가 지연돼 재판자원의 공평하고 공정한 이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되는 부작용으로는 △소권남용 만연 △승소자의 실익 저해 △구체적 공익 소송 개념 부재 등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은 패소자부담 원칙을 통해 앞서 제기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990년 법 개정 이후 소송 수가 줄었다는 보고도 없으며 공익소송의 경우 일부패소·승소가 대부분이라 패소자부담 원인이 승소자의 실익을 보장하는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종구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공익소송 중 손해배상청구소송의 경우에는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더라도 전부 승소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일부승소·패소로 나타난다"며 "소송의 본질적 부분에서는 일부 승소한 경우에는 전부 승소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배한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