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제 대출' 대출보다 사기에 가깝다?
2022.01.27 18:14
수정 : 2022.01.28 14:4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KBS '시사직격'은 오는 28일 밤 10시 내구제 대출에 연루돼 거액이 부채를 떠안게 된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도한다. 부제는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내구제 대출'이다.
급전, 대출, 내구제…생활비를 위해 돈이 필요한 청년들의 검색 키워드들이다.
대출희망자가 휴대전화를 할부로 개통해 대부업자에게 넘기면, 휴대전화 가격 중 일부를 현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대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대출보다 사기에 가깝다는게 '시사직격' 제작진의 말이다.
■ 내구제 대출로 받은 돈 100만 원, 석 달 사이 부채 900만원?
만 18세에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한 21세의 대학생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급전을 찾게 됐다. 대부업체를 이용하자니 신용도가 낮아질까 무서웠다. 돈 빌릴 곳을 알아보다 내구제 대출 광고를 접하게 됐다. 학생도 가능하다는 말에 현혹돼 대출업자에게 연락했다.
A씨 명의로 200만 원 상당의 최신 스마트폰 2대를 개통해 대부업자에게 넘기고 100만 원 남짓의 현금을 받았다. 향후 청구될 기기 할부 값과 통신료는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석 달 뒤, 통신사는 청년에게 900만 원이라는 통신료를 청구했다.
“핸드폰이 곧 돈이다. 학생도 가능하다. 사회초년생도 가능한 대출이라고 해서 포스터가 있어요. 그래서 신청을 했죠” (내구제 대출 피해 청년 인터뷰 中)
■ 통신료가 천만원? 내구제 대출의 숨겨진 수익 구조
내구제대출 피해를 본 청년 상당수는 수백에서 천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몇 달 사이에 통신 요금이 이렇게 커질 수 있는 것일까? '시사직격'은 내구제 대출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대출업자, 브로커, 유심 유통업자, 대리점 간 연결고리를 취재했다.
인터넷 광고를 통해 대출희망자가 대출을 신청하면 브로커와 먼저 만나게 된다. 브로커는 대출희망자와 통신사 대리점까지 동행해 최신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다. 휴대전화 가격의 일부를 대출자에게 지급하고 휴대전화는 브로커가 가져간다. 이후 브로커는 휴대전화를 다시 내구제 대출업자에게 넘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유심이 장착된 휴대전화의 경우 소액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출업자들은 대출자 명의의 유심과 휴대전화로 게임머니, 상품권 등을 소액결제로 구매해서 되판다. 매월 휴대전화 1대당, 100만 원가량의 소액결제가 가능한데 내구제대출이 휴대전화 2대 이상 이뤄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피해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것. 내구제 대출업자는 대출자 명의의 유심칩을 ‘유심 유통업자’에 넘겨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 21만원이, 벌금 300만 원으로 돌아왔다? 피해자도 처벌 받는 ‘내구제 대출’
지난해 11월, 내구제 대출을 통해 받은 휴대전화와 유심칩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시킨 내구제 대출업자 일당이 구속됐다. 이들이 4개월 동안 벌인 내구제 대출의 피해자는 무려 400여 명. 조사가 끝나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구제 대출업자 뿐 아니라 피해자들도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시사직격'이 만난 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청년 부부 중 B씨는 내구제 대출을 통해 유심칩 3개를 개통해 넘기고 21만 원을 받았는데 내구제 업자가 적발되면서 3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전기통신사업법 상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넘기는 것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처벌이 두려운 내구제 대출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리게 되고, 내구제 대출은 더욱 음성화, 고도화되고 있다.
내구제 불법 대출이 처음 등장한 것이 약 10년 전. 하지만 변종 불법 사금융인 내구제대출을 단속해야 할 정부 부처가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어 변변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내구제 대출로 내몰려 부채를 떠안고, 피해자이지만 범죄자가 되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