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재치있게…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는 '신스틸러'

      2022.02.10 18:05   수정 : 2022.02.10 18:05기사원문

'코심의 생생 클래식'은 국내 최고의 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직접 쓰는 오케스트라 이야기입니다. 매회 주제를 바꿔 재미있고 생생한 클래식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클래식 라디오 채널 '당신의 밤과 음악'의 시그널 음악으로 유명한 빌 더글라스의 '힘(Hymn)'.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멜로디는 나도 모르게 위로와 평안을 선사하는데 이 악기가 바순이다.



영어 표기인 바순은 독일에서는 '파곳', 이탈리아에서는 '파고토'라고 불린다. '파곳'이라는 단어에는 '막대기'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바순은 목관악기들 중 베이스 역할을 담당한다. 어떤 음악이든지 단단하게 다져진 베이스가 없다면 균형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바순은 목관악기들 간 균형을 잡아주는 주춧돌의 역할을 한다. 또한 현악기와 같은 단풍나무로 제작돼 현악기와 잘 융화되는 소리를 지녔다. 이 덕에 바순은 다른 악기들과 매우 잘 어우러지며 오케스트라 전체의 음향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길고 투박한 외형과 낮은 음색으로 어둡고 우울한 감성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 묵직한 중저음 속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선율을 품은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길고 굵은 관을 통과해 나오는 바순의 소리는 사람들이 듣기에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지녔고 뾰족하지 않은 포근한 감성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특유의 비음 같은 음색은 익살스러운 소리까지 섭렵했다. 저음부에서는 힘차고 속이 꽉 찬 음색이 돋보이며 중간 음역대에서는 우스꽝스럽고 희극적인 상황 표현에 효과적이다. 고음부에서는 어딘가 불안하고 오묘한 분위기기까지 연출하는 전천후적인 악기다.

바순은 악기 특성상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다른 악기에 쉽게 흡수되는 음색 때문에 여러 악기들과 합주할 땐 주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무대의 중앙에서 바순만을 뽐낼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지만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재치있게 음악 전체의 분위기에 맛을 더해주는 '신스틸러'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를 떠올려보자. 이 그림은 파리의 어느 오페라 공연장을 묘사하고 있는데 화가의 시선은 무대보다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머물러 있다. 이 작품에서 드가는 자신의 친구인 바순 연주자를 작품의 중심에 그리며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바순을 주인공으로 연출한 그는 어느 악기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바순의 대표적인 쓸쓸하고 슬픈 음색을 느껴보고 싶다면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의 1악장 첫 도입 부분을 들어보자. 바순 저음 특유의 비극적인 음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는 바순의 고음 음색이 강조된 화려한 기교를 엿볼 수 있다.
여기저기에 재치있는 효과가 발휘돼 곡 전체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바순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표규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바순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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