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분열의 정치

      2022.02.15 18:29   수정 : 2022.02.15 18:29기사원문


요약
·이재명·윤석열 말로는 통합, 실제론 분열 부추겨
·외신은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럽다"고 혹평
·이래선 누가 당선되든 또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박빙 대선에서 연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반갑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통합을 말하면서 동시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디스'하는 방식으로는 통합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윤석열 후보도 통합을 말한다.
그러나 거의 립서비스 수준이다. 속으론 전 정권 적폐 청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외신은 2022년 한국 대선에 대해 '혐오스럽다(Distasteful)'는 평가를 내렸다. 부끄럽다.

◇역대 대통령 모두 통합에 실패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으나 한국 정치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여야 간 거리는 더 멀어졌고, 진보·보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푸는 정치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한다"면서 "저부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다"고 말했다. 현실은 영 딴판으로 돌아갔다. 여야는 원수처럼 잡아먹을 듯 으르렁댔다. 2004년 3월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두 달 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했고, 노무현은 가까스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사에서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겠다. 국회와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불행히도 이 대통령 집권 2년차에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합의 정치가 가동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2013년 2월)에서 아예 통합을 꺼내지도 않았다. 야당과 협치 따위의 으례적인 말도 생략했다. 대신 '제2 한강의 기적'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의 의식은 아버지 시대(박정희 전 대통령)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는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그리고 파면이다.

◇통합 근처에도 못 간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2017년 5월)에서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저는 감히 약속 드린다. 2017년 5.10 이 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도 했다.

통합 공약은 모조리 빈말이 됐다. 문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다. 그는 지난 10일 연합뉴스 등 국내외 통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가짜뉴스 등이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이 보는 오늘날 한국 정치판의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는 통합에 실패한 문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재명·윤석열도 통합을 말하지만

이 후보는 작년 10월 후보 수락연설에서 "편을 가르지 않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진영과 지역,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누리는 대통합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5일 부산 유세에서는 "좋은 정책이라면 홍준표 정책, 박정희 정책이라도 다 가져다 쓰겠다"며 "통합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같은 자리에서 이 후보는 "밤새 만든 유인물 50장을 뿌리고 1년 징역을 사는 시대가 도래하길 원하느냐"며 검찰 출신 윤 후보를 겨냥했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윤석열 4대 불가론'을 내놨다. 무능·무지, 주술, 본부장(본인·부인·장모의 줄임말) 의혹, 보복정치 공언을 말한다. "평생 검사랍시고 국민들을 내려다 본 사람", "폭탄주 중독 환자", "김건희씨는 '조작의 여왕'"이란 유세 문구도 있다.

이 후보의 본심이 헷갈린다. 통합인가 네거티브인가.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을 수 없다. 앞서 이 후보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국민께 뵐 면목이 없다"며 "앞으로 네거티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약속은 벌써 빈말이 됐다. 이러니 통합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진정성 결여는 윤 후보도 막상막하다. 그는 작년 11월 후보 수락연설에서 "국민통합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보의 대한민국, 보수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말로만 통합이다. 윤 후보와 국힘은 네거티브 공방에서 한발도 물러설 뜻이 없다. 심지어 윤 후보는 언론 인터뷰(중앙일보 2월10일)에서 '집권 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거냐'라는 질문에 "해야죠"라고 또렷이 말했다.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은 같이 갈 수 없다. 전 정권을 심판하는 적폐 청산은 늘 분열과 짝을 이룬다.

◇네거티브는 독이 든 성배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는 13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진행 중인 비호감 후보들의 선거에 부인들도 끌려들어갔다"며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혐오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주요 사안에 대한 토론 대신 부패와 부정, 샤머니즘, 언론인에 대한 위협과 속임수가 선거를 삼켰다"고 전했다. 대선 후보들이 되레 국가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

현재로선 이재명·윤석열 둘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다. 누구든 새 정부는 과연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어림 없다. 지금 두 진영은 원수처럼 싸운다. 겉으론 통합을 말하지만 실제론 역대급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이래선 국민통합에 실패한 전임자들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권 주자라면 정권에 목을 맨 정치꾼들과는 그릇이 달라야 한다. 현명한 후보라면 당선 이후 나라를 꾸려갈 방안에 대해서도 미리 구도를 잡아둘 필요가 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포섭하는 통합은 성공한 정부로 가는 지름길이다. 네거티브는 독이 든 성배다.
잘못 삼키면 5년 내내 고생한다. 투표일까지 22일 남았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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