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DJP연합부터 윤석열·안철수까지

      2022.02.18 16:53   수정 : 2022.02.18 17:24기사원문


요약
·DJP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결합은 박근혜를 넘어서지 못했다
·정주영·이인제 등 제3 후보는 늘 양당 기득권 벽에 갇혔다

[파이낸셜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지난 13일 유튜브 기자회견에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한 국민경선을 제시했다.



윤 후보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제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선 "고민해 보겠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안 후보와 담판을 선호하는 윤 후보 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윤·안 단일화가 과연 이뤄질까? 불투명하다. 대선 투표일이 20일도 채 안 남았다. 일정이 빡빡하다. 국힘은 지지율이 뒤지는 안 후보의 자진사퇴를 원하는 분위기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는 문재인과 단일화를 추진하는 도중에 중도 사퇴한 적이 있다. 안철수는 '철수하는 정치인' 이미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안 후보는 18일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치자. 그러면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예전 사례를 보면 성공한 적도 있고 실패한 적도 있다.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를 살펴보자.

◇단일화로 대선 승리



·1997년 DJP 연합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4수생이다. 1971년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신민당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게 졌다. 이후 김대중은 납치, 사형선고 등 숱한 고난을 겪는다.

2차 도전은 16년 뒤인 1987년에 열린 13대 대선이다. 이때 김대중은 노태우-김영삼에 이어 3등에 그쳤다. 3차 도전은 1992년에 열린 14대 대선이다. 김대중은 또 졌다. 당선 트로피는 김영삼에게 돌아갔다.

절치부심하던 김대중은 네번째로 1997년 15대 대선에 도전한다. 전략을 확 바꿨다. 놀랍게도 자유민주연합을 이끌던 김종필과 손을 잡았다. 김종필이 누구인가. 군 출신으로, 5·16 쿠데타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를 창설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로 장수했다. 보수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이해 5월 새정치국민회의는 김대중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6월 자민련은 김종필을 대선 후보로 뽑았다. 11월 두 사람은 DJP 연합에 합의했다.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으로 하고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로 한다.

-16대 국회(2000~2004년)에서 내각제 개헌을 한다.

-경제부처 장관 임명권은 총리가 가진다.

김종필과 손을 잡은 이유는 간단한다. 지역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김대중은 호남 출신이다. 혼자 힘으론 도저히 그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알았다. DJP 연합엔 포스코 신화를 쓴 박태준도 가세했다. 그 덕에 김대중은 충청과 대구·경북에서 상당한 표를 얻었다. 결국 그는 이회창(한나라당)과 이인제(국민신당)을 누르고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외환위기 한복판에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자민련과 장관직을 공평하게 나눴다.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국민의정부 초기에 벌어진 경제 전쟁의 장수들은 거의가 자민련이 추천한 인사들이었다. 이규성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자민련 몫으로 입각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개혁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들은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임이었다"('김대중 자서전' 2권).

DJP 연합은 비록 김대중정부 중간에 깨졌지만 한국 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보수·진보를 떠나 인재를 두루 기용한 탕평책은 IMF 구제금융 졸업을 앞당겼다. 후임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파란의 연속이었으나 결론은 성공적이다. 노무현 후보가 초반 지지율 열세를 딛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경과를 살펴보자. 2002년 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덕에 대한축구협회장이던 정몽준의 인기는 하늘을 뚫었다. 반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지지율이 바닥을 기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우세 속에 민주당 안에서는 단일화 불가피론이 공공연히 나왔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DJP 연합만큼 이질적이다. 상고를 나온 노무현은 반 기득권을 상징했다. 정몽준은 재벌 2세로 현대중공업 그룹의 오너다. 상식적으로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대권 앞에서 둘은 잠시 차이를 내려놓고 힘을 모으기로 했다.

11월 노무현은 승부수를 던졌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안을 전격 수용했다. 누가 봐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몽준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두 군데서 실시한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은 모두 정몽준을 앞섰다. 유권자들은 노무현의 솔직담백한 모습에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막판 변수가 나타났다. 투표 하루 전인 12월18일 정몽준이 돌연 단일화 공조를 파기했다. 노무현의 반미 발언을 문제 삼았다. 참모들의 성화 속에 노 후보는 마지못해 정몽준의 집을 찾았으나 정몽준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심야 회동은 결렬됐다. 노 후보 진영은 속이 새까맣게 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투표함을 여니 노무현(48.9%)이 이회창(46.6%)을 앞선 걸로 나왔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 단일화가 당선에 기여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일화에도 대선 패배


단일화가 대선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했다. 저만큼 앞서가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꺾기 위해서다. 문·안 두 사람은 지지율이 비등했다. 3파전을 벌이면 박 후보의 압승이 분명해 보였다.

11월 안철수가 단일화 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다. 당시 안철수는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전국을 다니며 문 후보 지원 유세를 펼쳤다.

하지만 유권자의 최종 선택은 박근혜였다. 득표율은 박근혜 51.55%, 문재인 48.02%로 근소했지만 게임을 뒤집지는 못했다.

◇단일화 없는 대선은 어땠나

·1987년 노태우 어부지리

87년 체제 아래서 처음 실시된 13대 대선은 노태우(민주정의당)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전형적인 어부지리 승리였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은 한치의 양보없이 각자도생의 길로 나섰다. 김영삼·김대중 단일화는 될 듯 말 듯 하다 결국 물거품이 됐다. 노태우 후보는 36.6%의 지지율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김영삼은 28%, 김대중은 27%에 그쳤다. 김종필은 8.1%.



·1992년 제3 후보 정주영 실패

14대 대선에선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3파전이 펼쳐졌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제3의 후보로 나섰다. 단일화 없이 3인이 완주했다. 정주영은 반값 아파트 등 파격적인 공약으로 민심을 파고 들었으나 결국 보수·진보 양대 정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위에 그쳤다.

득표율은 김영삼 42%, 김대중 33.8%, 정주영 16.3%. 정주영 표는 김영삼 표와 많이 겹쳤다. 그럼에도 완승을 거둔 김영삼의 저력이 돋보였다.

·1997년 제3 후보 이인제 실패

7월에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대법관·감사원장·총리를 지낸 이회창을 후보로 선출했다. 경기지사를 지낸 이인제는 당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나 후보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회창 아들의 병역 의혹이라는 대형 변수가 나타났다. 이회창의 지지율은 곤두박칠쳤다. 이인제는 후보 교체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 후보로 나섰다.

DJP 연합 전선을 구축한 김대중에게 이인제의 독자 출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정치 9단 김대중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선 득표율은 김대중 40.27%, 이회창 38.74%로 아슬아슬했다. 김대중은 이인제(19.2%) 덕을 봤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에겐 천운이 따랐다.

·2017년 제3 후보 안철수 실패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으로 치른 2017년 대선은 3파전 양상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41.08%) 후보가 재수 끝에 대권을 차지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24.03%), 국민의당 안철수(21.41%) 후보가 뒤를 이었다.

안철수는 2012년과 달리 완주했으나 3위에 그쳤다.
정주영·이인제와 마찬가지로 안철수 역시 제3 후보에게 유달리 가혹한 한국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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