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립미술관 둘러싼 폐가… 중구 원도심 슬럼화 우려

      2022.02.20 17:59   수정 : 2022.02.20 17: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울산시립미술관은 지난 1월 울산의 문화 1번지를 표방해 온 울산 중구 원도심에 문을 열었다. 개관 후 2주 만에 2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국내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울산시립미술관에 대해 울산 시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과 침체된 원도심의 활성화다.

하지만 기대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대규모 주택재개발사업이 10년 넘게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계 일각에서는 미술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입장이다.

■공사판에 둘러싸인 울산시립미술관

지난 17일 오전 방학인 아이와 함께 울산시립미술관을 찾은 주부 이모씨(40)는 "차에서 내려 울산시립미술관으로 걸어가는데 얼마 못 가서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어디선가 페인트 냄새가 뒤섞인 악취까지 풍겼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이씨가 주차를 한 곳은 다름 아닌 미술관 바로 옆에 조성된 임시주차장이다. 미술관 코앞이지만 이곳은 안타깝게도 10년이 넘도록 준공되지 못하고 있는 '중구 B-04 주택재개발사업'구역에 포함돼 있다. 정상적인 주차장이 아니다보니 비포장으로 설치됐고 주차장 주변은 재개발에 따른 폐가와 빈집이 혼재하며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다.

울산시에 따르면 '중구 B-04 주택재개발사업'은 현재 추진 중인 울산지역 재개발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다. 32만9561㎡ 면적에 4175가구 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지난 2007년 8월 정비계획수립 및 지정고시에 이어 2011년 5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보상 문제와 조합 내부 비리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으며 차질을 빚어왔다. 다행히 최근 조합장을 새로 선출했고 현재는 '관리처분계획'인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보상과 철거, 시공, 준공 과정이 남아있어 사업 마무리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해달라는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의 요구가 높지만 울산시와 관할 중구청도 조합 일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조합 내 갈등이 해소되고 조합원들의 합의된 결정 없이는 준공 시점은커녕 폐가와 빈집의 철거 시기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울산객사 터 보존 결정

상황이 이렇게까지 놓이게 된 데는 미술관 부지를 옮기게 만든 문화재청의 '울산객사' 터 보존 결정이 한 몫을 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당초 현재의 임시주차장 부지에 건립될 예정이었다. 이곳은 옛 울산초등학교 자리였다. 미술관 부지로 확정된 뒤 지난 2015년 8월 실시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객사의 유구가 확인되자 문화재청이 현장 보존 명령을 내렸다. 이에 울산시는 고민 끝에 바로 옆 옛 북정공원과 울산중구도서관이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겨 건립키로 했다.

'학성관'으로 불렸던 울산객사는 조선시대 공무로 출장 온 관리의 숙소, 유생교육장 등으로 이용된 건물이다. 50여 칸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일제강점기 때 모두 헐리고 신식 학교 건물이 세워졌다.

울산시는 시교육청 소유인 울산초등학교를 매입한 뒤 미술관을 지을 생각이었지만 보존명령이 내려지자 애초 중구 B-04 재개발구역 '역사공원부지'로 묶여 있던 이 부지를 조합 측에 넘기고 공원부지와 지하주차장으로 조성해 기부채납 받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를 통해 울산시는 180억원 가량의 객사 터 보존 비용을 아끼게 됐다. 하지만 기부채납은 중구 B-04구역의 사업 차질로 장기간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조합원은 "유구가 나왔다는 이유로 형체도 없는 객사 터를 보전하라고 결정한 문화재청도, 멀리 내다보지 못한 울산시의 대처도 납득하기 어려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옆 공사장에서 날리는 지금의 흙먼지는 재개발조합만의 책임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역 문화계 일각에서도 객사 터가 이렇게 장기간 방치될 것을 울산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며 당시의 대처가 안일했던 것은 아닌지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다.

미술관 앞 '중구 문화의 거리' 한 상인은 "미술관이 개관했지만 주변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사람의 왕래도 기대보다는 못하다"며 "객사 자리에 미술관이 지어지고 예전 도서관과 북정공원, 동헌이 연계됐더라면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고 도심 속 문화예술공간으로 좀 더 일찍 자리 잡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술가 A씨는 "대규모 재개발구역이 미술관을 부채꼴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데, 앞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수년이 될지 십 수 년이 될지 미술관 주변은 장기간 공사판이 될 것"이라며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먼지와 소음, 안전사고 등의 우려로 미술관이 제 기능이나 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uls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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